노명현 시인의 우리가 남겨야 할 것은?

노명현 시인의 우리가 남겨야 할 것은?

소하 0 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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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명현 시인

​아라 뱃길


        노명현

 

아라강 뱃길 밟아

돌아드는 삼백 리 길

 

장강(長江) 물길 유장한데

뭍 그림자 애처롭다

 

이제는 마음 열고

그대 이름 부르지만

 

기다림은 환청 되어

빗물 되어 흐른다

 

떠나가는 배를 잡고

내 님 소식 들려올까

 

 

저 뻘은 무심한데

추억마저 애달프다

 

물어물어 찾아간 곳

사랑 노래 뜬금없어

 

강심은 깊이 모를

뱃고동만 이슥타

 

 



엄니 냄새

 

         노명현

 

 가을 상행선은

 자랑 이야기로 설렌다.

 

 덜컹대는 엄니

 쪼그라든 젖 감기

 

 말린 대추 우수수

 키워 내신 곶감

 한 두룹

 

 땀방울 반짝

 창가에 어리는 입김이

 가을 햇살에 너무

 영롱하다

 

 싫다 해도,

 니 새끼라 사랑스럽고

 떠난 자식도 품 안에서

 내년 젓장을 담그신다.

 

 감자의 못난 심지도

 센 강물에는 떠밀려

 말라도 가던 것을

 모를까 봐

 

 엄니 보따리가 활짝

 터진다.

 



 

 더블백 데이

 

          노명현


 입영 전야,

 

 컴퓨터 이동화면 가득

 '부재중'이라는

 가을체를 띄우고

 

 칠십 년 시공을 가로질러

 할머니와의 마지막 접선을

 시도한다.

 

 

 할머니, 저 군(軍)에 가요

 

 군(郡)에,

 텃밭이 물긴데

 뭐 하러 멀리 가

 

 삼 년만 다녀올게요

 

 삼남에 간다 코

 눈이 마이 와 미끄러운데

 길 조심허고

 

 급하신 일 있으시면 옆집

 장수댁 찾으시고요

 

 장사 간다 코

 멀리는 가지 말 거래이

 

 초록을 다 내어주고도

 낙엽송 깡마른

 가녀린 손길로

 할머닐 크게 한번 안아 보고

 흰머리 올올이

 긴 주름  눈동자에 새기며

 돌아 나오는 발걸음에

 밖에 비 오나

 大喝一聲이 汽笛의 속도를

 채질합니다

 

 할머니,

 제대 무렵에는 이제까지 다 주신

 눈알 사탕

 더블 백 가득 채워 올게요.

 

 이제는 제가 업어서

 할머니의 어깨너머로 들려주시던 자장가

 소리보다 더 크고 의젓한 세상

 채워올게요.

 

 아, 할머니

 나의 할머니

 그 곱디고운 음성이

 귓전을 타고

 사립문 따라나서서

 

 병영 철길 아득히

 저물어 갑니다

 

 



삽날이 되어


          노명현


 너의 혀끝에선

 잘 익은 노동의 냄새가 난다

 

 날이 패인 하루를

 말갛게 씻고

 어제 흘린 숨소리가

 낮달로 부풀어 오르면

 저녁을 베고 잠든 정직한 눈빛들이

 하나 둘 모여 서로를 부축하며

 아침 이슬로

 등목하는 곳

 

 시린 무릎도 빠진 틀니도

 때론 밀물처럼 몰려오는 고단함도

 형님도 되고 아우도 되어

 서로를 품앗이하고

 미약한 맞손 잡이로나마

 졸음을 나누며

 땀방울을 대지에 심는

 싱싱한 몸짓

 

 오늘 하루도 햇살에 반짝

 패여난 풀섶을 돋아나는

 풍요로운 미소

 

 너의 심장이 되어

 내일의 부푼 약속과 함께

 출렁인다

 

 어엿한 세상의 목발이 되는

 그날까지

 휘청이고

 출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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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덕은 화가 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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