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해 시인의 꽃다리 사랑 8

박선해 시인의 꽃다리 사랑 8

소하 0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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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해 시인


윤회의 꿈


          박선해


무심히 마주한 모든 일들을 품어라


삶의 긴 터널을

다 지나지 못하든 것들이

구름에 옷을 벗어 던지고

멈추어 선 새처럼 소리 내는데

꽁꽁 여며 둔 시간을 풀어 내던 언어는

구겨진 굽다리처럼 희망을 잃어 가고 있다


빗살무늬 진 마음들이

야철장에 수북하게 재이고

금 은 쟁반들이 쨍그렁 나동그러지고

세속의 소꿉들이 주물로 녹아 내리고

의로운 정 하나에 삶도 활활 탄다

앞마당엔 한 줌의 재로 살을 풀어 내며

항변없는 얼굴이 편편히 누워

재생의 회전문을 찾아 돌아 든다


깊은 밤의 고요를 거치면

속살 걷어 낸 달은

눈시울 적시던 희망을 들어

덧없이 붉혀 묻히던 추억을 되살려

회상으로 화장을 하고

꿈조차 버리지 못하며 넘어 가는 생애

어떤 이물로 돌아 올수나 있을까

별의 저편은 영혼의 서곡을 부른다


다시 너는

더욱 충실히

탁마된 언어로 태어 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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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 꽃


           박선해


월야에 풍경이 웽그렁 웽그렁

여늬 불법이 은애로 젖어 들고

쏟아지는 별빛에 정성이 도취하여

울긋불긋 밤길에

행운을 비는 마음의 허상에도

천년의 향기는 앞장 섰다


볼수 없어도 스쳐 갈 그림자에

감동을 피워 내고

내생엔 실화로 행복을 피우도록

만인에 원형의 불 질러라

태워 달라고 태워 달라고


산허리를 감도는 운무

신성한 기운이 속살을 드러내면

월광은 깊은 사색에 든다

떠나지 못한 무형들이 바람을 가르며

부메랑으로 들고는

전령하나 뭉실뭉실 모여 앉는다


등굽은 햇살이라도 내리면

무선으로 보낸 미련을 남긴 채

꽃타래로 묶어 뒀다가

숨겨 두었던 봄빛에 지니고 갈

새 정을 묻으며 잠들 수 있을까


한끝 한끝 무심히 그려 드는 꽃

붉게 물들이며 잠들면 다시,

진짜 피어날까

만다라.


한끝 한끝 무심히 그려 드는 꽃

붉게 물들이며 잠들면 다시,

진짜 피어날까

만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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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짓는 상념


           박선해


연하게만 살아지지 않는 삶에

달콤하거나 절망할 하루가 속살 헤집고

입김을 풀어 원고지를 내민다

탈벗는 하루에 지식이 어그정하거나

빈곤한 표정으로 달음질 치던 아픔이

툴툴 털고 일어 서면 좋으련만

눈뜨고 눈감는 하루의 전표로

심장은 취하지도 노래하지도 않고

그저 호젓하기만 할뿐 못내 섭섭해 진다

구석구석 애정을 뿌리던 어리광이

번다한 이력에 구릿빛으로 사유하고

여물지 못한 눈시울에 외로운

오후를 거둬 들이며 노을을 짓는다

옹송한 저 살풀이

후두둑 떨어질 것만 같은데

가끔 궤도를 벗어나 헤엄치는 눈

바다는 무엇이 솓구칠까

짧은 눈빛이 머문다

한편

소슬한 갈대숲 소리 누운 정적을 지나

거부할 수 없는 밤을 꾸욱 재우고

와삭한 새벽이슬 모은

단단한 아침을 등업시켜

소근한 하루를 열었다.




항구의 저녁


           박선해


오락가락한 날씨가

불쑥 변덕스럽더니

깜짝할 사이 가을 쫒아 내고


온 몸을 동동거리면서도

추운 줄 몰랐던 그 겨울이


기류의 회전발에

철새들도 제 갈길을 찾는


낙엽은 쓸쓸하다

옷깃은 외롭다

손발은 시려웁다

추워진다고 춥다고 옴싹일때


지평선,

밤으로 가는 대지가

온심장을 붉혀 퍼지르는데

최고의 순간을 맞아

뚝 떨어는 노을 한 뭉텅이

마음 꽂힌 첫만남이

주저없는 환호성으로 존재의 꿈을 품는다


기쁨은 기쁨으로 아리고

슬픔은 슬픔으로 빛나고

세상 모든 정성을 그려 내는 항구


그 풍경을 사랑하는 밤은 여전히 멈추지 않는다.




삶, 그 흔적


          박선해


되돌아 올 수 없는 시간은

평상에서 장독대로 여운을 옮겨 나르고

저 먼데 깊은 산여울은

첫눈에 안개 흐르듯 그리움으로 퍼진다


아랫목 윗목은

성장 해 들고 난 세대가 되었고

평생을 바쳐 지킨 모심의 기도는

앞마당 석류 한그루에

다홍빛 미소가 되어 활짝 피었다


세월의 때 묻은 벽시계 하나

먼길 넘은 어미의 시간에 맞춰

젊음을 유지한 채

장식이 되어 짹깍인다


처마끝으로 보이는 건

아직 살아야 할 일들이 많음이라

형용할 수 없는 무엇은

오늘따라 내린 비처럼

다만 욕심내지 말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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