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채원의 시詩애愛뜰 - 자작자작自作自作 10
색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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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1 16:15
여채원 사진 作
두 마음
소선 여채원
학교를 가는 아침이면
아랫마을 사는 혜숙이가
우리집 장독대 위에 가방을 올려 놓고
마당개 메리와 장난을 치며 노는 일이 잦았다
울 엄마의 고집을 알기 때문이다
세수를 안하고 가방만 울러매면
혜숙이가 기다리지 않아도 되건만
엄마는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밥공기가 반 이상 줄어들 때 까지 지키고 서서
기어이 목구멍으로 삼키는 것 까지 보고야 만다
성격 좋은 혜숙이는
내가 엄마와 실랑이 하는 동안
차라리 메리와 나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미안한 마음과 달리
정수리 짧은 머리카락은
그날따라 곧게 서서 찰랑거렸다
실개천에 놓인 나무다리로 혜숙이를 곱게 건너게 하고
나는 훌쩍 실개천을 뛰어넘어 발걸음을 맞춘다
아침이슬 머금은 풀 사이로
신발을 적실만큼 작은 오 솔 등굣길에는
유독 비실거리고 왜소했던 나를 위한
엄마와 혜숙이의 두 마음이 함께 놓여 있다
▣ 작가노트 ▣
이마가 넓어 별명이 '태평양' 이었던 혜숙이는
별명만큼이나 마음이 넓었던것 같다
제작년 만난 혜숙이는 울 엄마의 안부를 물었다
'어머니 여전 하시나' 하며 어린시절
혜숙이도 나와 함께 앉혀서 억지로 밥을 먹이시던
우리 엄마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다른 엄마들 처럼 담임선생님 찾아뵈며
인사를 드리지 못해 미안했던 당신이
유일하게 해줄 수 있던 게 밥 아니었을까..
또래에 비해 약한 막내딸을 엄마가 챙겨주었던 것처럼
이젠 연로하신 엄마를 위해 내가 보살펴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