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중근 시인의 찾아다니는 삿갓시

유중근 시인의 찾아다니는 삿갓시

포랜컬쳐 0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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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야 불이야


                 유중근


어린 어느 날에

동명 장터 유일한 초가집

친구들이 민속촌이라 했지


골목길 들어서는데

우리집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동네 사람들 양동이마다 물을 들고 뛰쳐 나 오고

어느새 아버지는 지붕 위에 올라

쇠스랑으로 볏짚을 뒤집으며

물을 붓고 있었지


여섯 살 터울 남동생은

어머니 앞치마에 얼굴 감추고

동생보다 더 놀란 어머니 얼굴엔

먹구름이 내려앉아 있었지


소죽 끓이는 부엌에

쪼그리고 앉았던 동생이

부지깽이로 삐져나온 지푸라기에

살짝 대고 돌아섰더니


남동생의 손에는

천 원짜리 지폐가 들려 있었고

상기된 얼굴에 철없는 미소가 있었지


이윽고 초가집 마당엔 

한바탕 슬픈 막걸리 판


삐뚤삐뚤 돌담보다 낮은 초가집

아버지 등목하시던 우물가

어머니 보물창고 장독대

누렁이 눈만 껌뻑이던 외양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지만

추억은 더 생생하네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그 초가집 다 태워 버리고

멋진 스틸하우스 지어 드릴텐데

그 분들 살아 계신다면

그 시절 다시 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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