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추천하는 좋은 시詩 4
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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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9 20:58
김단지 시인
後에
김단지
고요는 시간을 잠재우고
적막은 말을 비우는 일이리라
나는 고요로 멈춰서서
적막한 말 따위는 쓰고 싶지 않다
이 별에서의 이별은 고요를 평형수처럼 유지하고 싶어서였고
저 별까지의 약속은 적막한 말뿐이었음을 알아
이제야 서러운 약속 하나 사라져 가는 뒷모습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이었다
시는 괄호 안에 가둘 수 없는 생물의 언어다
시는 내게 그런 것이다
단순히 어떤 기억, 그때의 감정들과 생각 부스러기를 모아 순간 순간을 적어내는 일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글로 다 그려내지 못한 풍경과 존재들이 얼마나 많은가
언어를 묶어둘 수 있는가
혹여, 마음에 정처가 없을 땐 글을 쓰면서 마음을 정하기도 하기에
그러기에,
비에 눅눅해진 언어를 바짝 말리는 과정이다
외로움을 터는 몸부림이다
낯선 산행길에서 고라니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일이다
아무것도 없다가, 불쑥 솟아나는 사막의 모래언덕을 허무는 일이다
내 시에는 기름진 고기가 없다
*홍말효 시인이 추천하는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