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해 시인의 꽃다리 사랑 9
남명 오솔길 시화전에서, 가을날
흑설탕 그리고 화가 장
박선해
그녀, 장은
여류 시인이 놓고 간
흑설탕 한 스푼을
막 끓어 오른 머그잔에 떨어 뜨린다
은빛 티스푼의 손끝에는
잠깐 눈부신 미소가 스친다
그녀의 얼굴에선
시인의 달달한 향기로 차오른다
오늘 밤은
하얀 눈이라도 내리길 소원하며
폭삭폭삭 쌓였으면 하고
눈내 나는 첫아침을 맞이 하는
티없는 여인들의 설렘과 행복이 있었던
잠시잠시 만남들을 상상으로 부른다
제법 괜찮은 설탕물에 담긴
그녀의 온유한 향유시를 마시니
넙덕넙덕 얼굴대신 상큼한 호박이
넝쿨째 테라스위 흥감스레 놓아졌다
신통한 여류 시인이
함지박 그릇에
사랑법을 수두룩 담고는
투명 선녀처럼
신출귀몰 한편의 시를 병풍처럼 펼친다
이내 여류 화가는 먹물을 올린다.
여인의 향기를 맺으며
박선해
굿엔 굿스,
어쩌면 언젠가는 누군가를 까닭없더라도
만나기 위해 사는 우리들인가 보다
온후한 풍경을 가진 얼굴들이
첫만남을 가지고
이야기를 태운 커피는
여인들의 향기를 피우며 정감을 타고 내린다
한참을 주고 받는 대화가 어색하기 보다는
한순간에 십수년을 푹 익혀 버렸다
닮은 점을 찾기나 할듯 주거니 받거니 똑똑하다
국화향 바이올렛빛 구절초도 사랑스럽게 핀,
마음 비추는 가을이 물씬히 젖는다
커피는 내일의 향기를 남기고.
그런가봐
박선해
조각처럼 살아왔던 삶을
그늘에 숨기려 애써 두눈을 감았어
하늘도 때론 구름 지거늘
그늘 없는 곳 어디 있으랴
먼데서 봐주는 사랑으로
꽃한송이 가슴에 피어나네
시들지 않은 꽃으로 남으려
뒷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해
인생이란 피는 꽃들이 아파 보이는 거.
목련꽃 엄마를 기리며
부제:박점숙 화가님의 '사모'
박선해
살아오신 그 낮을 곱게 접고 접어
긴긴 시간들을 내어 놓으며 온
한밤을 누구하나 이름 앉혀
손 한번 잡고 지닌 것 없이 가시던
뒷모습을 차마 잊지 못합니다
내가 찾는 이름은 이미 없습니다
저기 저만치 하얀 꽃잎 미로속으로
아련해지는 그리움만 남습니다
인생의 첫날을 주시고
삶의 수정을 주시고
마지막을 목련꽃 잎하나 떨구고서
손에 들지마라 멀리 가신 당신을
사모하는 마음만 뿌립니다
당신을 그리워 애틋한 마음만
목련꽃 가지끝에 한점 흘립니다
그리워 마라
저 멀리 뒤를 보이지 않으시는
당신을 사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