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근 시인의 다닥닥 돋아나는 그리움 2
임성근 시인
가을
정거장/임성근
무더운 불볕더위 쫓겨난 자리마다
구름도 한 점 없는 초가을 산들바람
신이 난 고추잠자리
고개 숙인 벼 이삭
들판엔 금빛 너울 팔 벌린 허수아비
하늘도 시샘하여 여우비 찔끔찔끔
농부의 바빠진 손길
귀에 걸린 웃음꽃
유중근 사진가 作
그리움
정거장/임성근
농익어 삭아버린 짜디짠 젓갈처럼
아쉬운 마음속에 미련 남은 기억으로
썼다가 부치지 못한
묵은 편지 같은 것
입안을 감고 도는 향긋한 그 향기에
알싸한 여운마저 웃음을 짓게 하네
숨겨둔 눈물의 의미
부질없는 기다림
입추
정거장/임성근
새벽이 눈뜬 아침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푸른 물감을 칠한 듯 푸르고 높습니다.
입추의 오늘
달라진 마음에
살갗을 스치는 바람이
시원함을 묻히고 가는 착각을 느낍니다
아직은 여름 더위가
빨갛게 동트는 하늘에도
벌써 고추잠자리 가을을 춤추고
매미 떼 울음 쫓는 귀뚜리의 노랫소리
아침의 정적을 깹니다
아-여름을 사냥하는 가을은
아무도 모르게 살짝
또 이렇게 찾아오나 봅니다
매미
정거장/임성근
인내로 숨죽이며 어둠 속 움츠렸다
웃는 듯 울음 울며 불태운 청춘의 덫
사회적 거리 두기로
입만 벙긋 울었네
가로수 목이 마른 한낮의 찌는 더위
찌르르 울다 지쳐 혀 빼문 붉은 입술
연이은 재난 문자에
지친 육신 현기증
아직은 한창 더위 여름이 저만친데
가을을 재촉하는 귀뚜리 노랫소리
말못한 볼멘 투정만
마스크 속 옹알이
서산에 붉게 걸린 황홀한 저녁노을
오가는 눈길 속엔 무표정 얼굴들뿐
바쁘게 재촉하는 길
잊혀져간 여름날
떠난 후에
정거장/임성근
빼다지 속에 감춘 부모님 내리사랑
하얗게 서리 앉은 반평생 지난 후에
살짝이 펼쳐본 앨범
가고 없는 한세월
받기만 하던 사랑 예전엔 몰랐었네
하세월 보내놓고 이제사 철이 들어
받을 땐 몰랐던 그 정
떠난 후에 깨닫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