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비주 시인의 오후 석점, 바람의 말
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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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9 11:58
김비주 시인
주부생활 별책 부록
김비주
열두 살에 쿼바디스를 읽었다
옆방 세들어 살던 새댁 아줌마의
주부생활 별책 부록, 세계명작소설
이른바 똥종이의 극대치
활자에 목마른 나는 무척이나 좋았지
처음부터 끝까지
물샐 틈 없는 활자들의 전방위 체제
테스, 주홍글씨, 폭풍의 언덕들이
머리 위로 쏟아져 오고
그 중에서 쿼바디스는 어린 내게
세계를 말했지
사랑, 배신, 폭정, 순교, 권력을
종교와 권력은 양날의 칼
사랑은 모든 걸 극복하지
솔직히 열두 살이 읽어내는 세계가
뭐 그리 대단했을라고
활자의 폭식, 굶주린 나에겐 좋았지
결심했어 부록에 눈먼 나는
어른이 되면 주부생활을
꼭 구독할 거라고
하지만 난 아직도 주부생활을
구독하지 않는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