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중근 시인의 찾아다니는 삿갓시
포랜컬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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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3 21:25
불이야 불이야
유중근
어린 어느 날에
동명 장터 유일한 초가집
친구들이 민속촌이라 했지
골목길 들어서는데
우리집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동네 사람들 양동이마다 물을 들고 뛰쳐 나 오고
어느새 아버지는 지붕 위에 올라
쇠스랑으로 볏짚을 뒤집으며
물을 붓고 있었지
여섯 살 터울 남동생은
어머니 앞치마에 얼굴 감추고
동생보다 더 놀란 어머니 얼굴엔
먹구름이 내려앉아 있었지
소죽 끓이는 부엌에
쪼그리고 앉았던 동생이
부지깽이로 삐져나온 지푸라기에
살짝 대고 돌아섰더니
남동생의 손에는
천 원짜리 지폐가 들려 있었고
상기된 얼굴에 철없는 미소가 있었지
이윽고 초가집 마당엔
한바탕 슬픈 막걸리 판
삐뚤삐뚤 돌담보다 낮은 초가집
아버지 등목하시던 우물가
어머니 보물창고 장독대
누렁이 눈만 껌뻑이던 외양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지만
추억은 더 생생하네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그 초가집 다 태워 버리고
멋진 스틸하우스 지어 드릴텐데
그 분들 살아 계신다면
그 시절 다시 온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