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완식 연재 詩소설 - 달맞이꽃(2)
2. 호숫가에서
비가 온다.
봄비가 내린다.
화수는 퇴근하기가 무섭게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 그의 원룸 방향 대신에 일부러 반대 방향으로 차를 돌려 근처의 호수로 갔다.
아직 해가 저무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추적추적 내리는 빗방울과 비구름 때문에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평일 날은 인적이 드문 호수인데, 비가 내리는 저녁의 호숫길은 더 쓸쓸했다.
비 내리는 날은 호숫길을 걸어요
후두둑
길섶 민들레가 놀라 고개를 들면
난 당신께 보내는 편지를 써요
호수를 걸을 때는 우산을 접어요
참방참방
호수 위를 뛰노는 빗소리가
당신 발자국 소리 같거든요
비가 내리면 그리움은 더 넘쳐요
찰랑찰랑
저수 댐을 넘은 호수는
당신을 향해 정처로 흐르죠
이 빗물로 쓴 편지
빗물에 띄워 당신께 보냅니다
이 편지 잘 도착했나요
봄비로 쓴 편지 -
화수는 핸드폰 속 그만의 노트 공간에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를 적었으나 보내지는 않았다.
그녀에게 카톡으로 보내는 편지는 그때그때의 화수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톡을 받는 그녀가 화수의 주체못하는 감정에 같이 휩쓸릴까 조심스러웠던 까닭이었다.
그녀와 네 번째의 만남과 이별을 했었을 당시에도 그랬다.
그녀의 복잡한 감정을 화수가 다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직접 만나지도 못하면서 핸드폰 기계 속에 그의 감정을 가득 담은 글을 시도 때도 없이 보내고, 그것을 이해하고 헤아려달라는 압박을 무언중에 하고 있었다는 것을 화수 자신은 정작 모르고 있었다.
화수는 우산도 없이 주적주적 내리는 보슬비를 맞으며 이런저런 생각으로 호수를 한 바퀴 다 돌 때쯤에서야 내일 아침 보내게 될 알람톡이 그녀와의 재회가 있고 나서 보내는 일백 번째의 알람톡이라는 것을 생각해내고, 걸음을 재촉해서 주차해 놓은 그의 차로 돌아와 내일 아침 그녀에게 보내주게 될 알람편지를 다시 썼다.
12시가 조금 넘어 그녀가 화수에게 회신을 해주었다.
지난주 금요일에 그녀로부터 카톡이 들어왔었으니 3일 만에 그녀가 화수에게 보내준 톡이었다.
아마 점심시간인 모양이었다.
화수는 탁송 장비차에 올라 시동을 잠시 끄고 카톡을 확인했다.
그녀가 귀한 점심시간을 할애하여 톡을 작성해 보내준 것에 화수는 감사하며, 화수는 글자 하나하나를 마치 한문 한시를 독해하듯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 내려갔다.
화수씨!
오늘도 잘 지내시나요?
오늘 여기는 비가 그쳐 상쾌한 봄기운이 물씬한데 그곳도 비가 그쳤나 모르겠네요.
항상 운전을 하고 있는 화수씨라 비가 오는 날은 더 신경이 쓰여요.
늘 그렇듯 안전운전하세요!
성질 급한 봄바람이
제 친구를 데리고 왔나봐요
친구는 낯선 풍경에 수줍어
얼굴도 못 내밀고
봄바람은 눈치만 주네요
달맞이 고개엔 동백이
시들해진 기분에 몸을 움츠리고
겨울 전령도 물러날 준비를 해요
꿈틀거리는 남녘바다를 보니
어김없이 봄은 오나봐요
당신이 보내준
일백 번째 달맞이 꽃송이가
제 가슴속에 들어온 것처럼
봄소식 가득 품은 캠퍼스에서...
수연.
그녀는 달맞이고개에서 살고 있다.
달맞이길에서 그녀의 직장인 부산의 모 대학 본관까지는 50여 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출퇴근 거리로는 짧지 않아 어차피 원룸을 얻어 다니는 거라면 그녀가 있는 대학 근처가 편하련만, 그녀는 바다가 좋아서 그리고 달맞이길 언덕이 좋아서 부산에서도 그곳을 골라 살기로 했는데,
복잡한 시내나 번잡한 대학가 근처로 원룸을 옮길 바에는 차라리 직장을 옮기는 것이 낫겠다며 굳이 달맞이길 언덕을 고집했다.
수연은 그녀의 부모님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울산에서 줄곧 자라 그곳에서 대학까지 졸업하고 나서, 지금 그녀가 다니는 부산의 한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기 위해 진학을 했는데,
석사과정을 마친 후 그녀의 가정 형편상 박사과정을 포기하려고 하자 그녀의 재능을 눈여겨 지켜본 그녀의 지도교수가 제안하고 추천까지 해주어서 그 대학 본관 행정실에서 평직원으로 일 년째 근무하고 있었다.
수연은 앞으로 일 년 동안은 더 그 일을 하며 돈을 모으고, 내년 새 학기에는 중단했던 박사과정을 다시 시작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