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완식 연재 詩소설 - 달맞이꽃(13)

수필, 소설

정완식 연재 詩소설 - 달맞이꽃(13)

방아 1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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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세 번째 이별

    

 

수연이 팔짱을 낀 건지, 납치하는 건지 손목에 잔뜩 힘을 주고서 화수를 데리고 오다 멈춘 곳은 어느 골목길의 입구였다.

언뜻 보기에는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도 비좁아 보이는, 딱딱한 사각의 보도블록이 깔린 좁다란 골목길이었다.

 

수연은 다시 화수의 팔을 끌어 아무도 보이지 않는 한적한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수연의 구두 뒷굽에서 딱딱 소리가 나자, 수연이 그 소리가 신경이 쓰였는지 걸음을 늦추었고 좁은 골목길로 인해 팔짱을 끼고 있던 두 사람의 거리가 더 좁혀진 듯 밀착되어 있었다.

 

50여 미터를 안으로 더 들어가 두 사람은 간판이 있는 듯 없는 듯 잘 보이지도 않는 한 일반 가정집의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오래된 일본식 건물이었다.

 

울산의 구도심에 남아 있던 일제강점기 시대의 건물을 개조해 만든 카페로 보였다.

"지금 이 시기에 일본의 잔재가 그대로 울산 한복판에 남아 있는 게 신기하고 기분이 묘하죠?

저도 처음에 친구 소개로 여기 왔을 때 기분이 별로였었는데, 안에 들어가서 인테리어도 보고 여기에 왜 이런 카페가 있는지 사연을 듣고 나서는 이해를 하게 됐어요.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보시죠. 화수씨도 보면 알 테니까. 호호."

 

수연의 얘기에 궁금증을 안고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밖에서 보았던 일본식 건물이란 생각을 싹 잊게 해줄 만큼, 인테리어와 소품들은 다 한옥에서 보던 그것들로 가득했고 한쪽 벽면과 그 앞에 놓인 테이블에는 책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어때요? 기분이 한결 편해지죠?

여기 이 문화의 거리가 원래는 울산의 중심지였는데, 울산이 공업 도시로 근대화과정을 거치고 현대화되면서 신시가지나 외곽지역을 중심으로 도시가 개발되고 팽창되었어요.

 

이 지역은 건물들이 노후화되고 길이 좁아, 개발이 되지 않으면서 점점 슬림화되어 사람들이 찾지 않게 되자, 울산시에서 울산의 옛 자취는 그대로 남겨두면서 좀 더 젊은 문화의 거리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리모델링을 시작했는데, 이런 골목길 안까지는 시에서 다 신경을 쓰지 못하자 뜻있는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이렇게 리모델링을 하면서 생존을 모색하기 시작했대요.

 

여기도 그런 곳 중의 하나로 여기 사장님이 시와 소설, 수필 등을 쓰시는 작가시라는데, 사정이 넉넉하지 못해서 메인이랄 수 있는 앞쪽 큰 거리에는 가게를 못 내고, 이 안쪽 골목에 이런 독서 카페를 차린 거래요.

화수씨도 글 읽기를 좋아하고 시를 쓰기도 하는 것 같아서 이곳이 문득 생각나 제가 화수씨를 여기로 데리고 온 거예요."

 

수연은 화수가 보내오는 카톡에 있던 시를 읽으며, 그가 감성이 참 풍부하고 글도 곧잘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었고, 그래서 이런 분위기의 카페를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 절 위해서 일부러 수연씨가 이곳을 안내해주셨군요. 고맙습니다."

 

화수가 수연을 따라 격실처럼 나누어진 빈자리로 들어가면서 언뜻 보니 여기저기 공간에 어울리는 시화와 붓글씨, 시가 들어간 크고 작은 액자들이 적당한 곳에 예쁘게 걸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고, 두 사람이 앉은 자리의 격실 공간에도 짧은 시 한 편이 적힌 시화가 걸려 있었다.

 

자리에 앉아 두 사람이 마실 음료와 간단한 조각 케이크 메뉴를 정하고, 수연이 주문 카운터로 가서 주문을 마치고 돌아오자, 그때까지 그들 자리에 있던 시화를 들여다보던 화수는 수연이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하더니 그 액자 속의 시를 낭낭한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로 수연을 향해 읽어주었다.

 

 

들을 수 있어 고맙다

촉촉한 빗소리를

조용한 노래를

은은한 웃음을

그리고 날 불러주는 너의 목소리를

 

내게로 와줘 고맙다

바람이

꽃이

봄이

그리고 그 무엇보다 네가

 

- 고맙다 -

 

"화수씨가 시를 좋아한다는 제 생각이 맞았던 것 같네요.

시를 읽는 목소리도 참 듣기 좋고...

근데 화수씨는 언제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나요?"

 

". 지금 하는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해도 될 것 같아요.

책을 읽거나 사색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시집을 보게 되었고, 저도 조금씩 본격적인 흉내를 내기 시작했는데 정식으로 시를 배우거나 전공을 한 게 아니어서 아직은 시라고 부르기에는 부끄럽습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문예반 활동을 조금 하기도 했었고, 대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호기롭게 무턱대고 신춘문예에 응모한 적도 있긴 합니다.

물론 보기 좋게 다 낙선했었고, 그 후론 잊어먹고 다른 친구들처럼 취업 준비에 매달렸었지요."

 

"그랬었군요. 어쩐지 제가 시나 글쓰기 쪽은 문외한이나 다름없어 잘은 모르지만, 처음 쓰는 시는 아니다 싶었어요. 이건 제 특급 칭찬이어요. 호호."

 

수연이 다시 환하게 웃어주었고 그  미소는 화수를 기분 좋게 만들어주었다.

 

"아닙니다. 저 스스로 부족하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보다 저는 수연씨가 써서 보내준 글을 읽으며 수연씨가 오히려 더 감성이 풍부하고 글도 훌륭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요? 그건 화수씨의 특급 칭찬인가요?"

 

두 사람이 다시 마주 보며 웃었다.

 

잠시 후 진동벨이 울리고 화수가 일어나 픽업 카운터로 가서 주문한 음료와 조각 케이크, 그리고 포크와 냅킨 등을 챙겨왔다.

 

"조금 있다가 저녁 식사를 해야 해서, 여기서는 간단히 드시는 걸로...

, 화수씨는 좋아하는 음식이 어떤 종류예요?"

 

". 저는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다 잘 먹는 편입니다만, 굳이 종류를 댄다면 한식을 좋아하긴 합니다. 물론 아침 식사를 간단히 커피와 빵 종류로 해서, 점심이나 저녁은 일부러라도 한식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있고요.

 

제 엄마가 제가 어릴 적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셔서 식사 준비는 아버지와 저와는 나이 차이가 좀 많은 누나가 주로 해주셨는데,  둘 다 찌개를 잘 끓여주셨어요. 그래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등 찌개 종류를 즐겨 먹었던 것 같아요."

 

"! 그러셨군요."

 

수연은 화수가 찌개 종류를 좋아한다는 그의 답변보다는 그의 엄마가 그가 어릴 적에 돌아가셨다는 말에 더 마음이 쓰여서, 잠시 할 말을 잊으며 둘의 대화가 잠시 끊겼지만, 화수의 표정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덤덤해 보여서 그나마 안심이 된 수연이 다시 대화를 연결해 나갔다.

 

"이 동네가 화수씨가 여기 오면서 보았다시피, 일본식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어서 그런 이미지와 연결된 라멘이나 카츠, 이자카야같은 일식 요리를 하는 식당과 카페가 많은데 아마 우리처럼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그런가 봐요.

 

그런데 마침 이 골목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옛날 우리 한옥을 개조한 한정식 맛집이 있으니, 차 한 잔 마시고 식사할 때는 그리로 가면 될 것 같네요."

 

수연이 마치 대단한 걸 생각해낸 것처럼 기뻐하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화수를 바라보자 화수는 그런 그녀가 참 귀엽다는 생각을 했고,

반면에 수연은 화수에게 자신의 마음 한구석에서 잠시나마 일었던 불편함, 즉 화수의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말이 신경이 쓰여 순간 대화를 멈칫했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의식적으로 자신의 귀여운 표정을 화수에게 보여주었다는 것을 생각해내며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죽음을 맞는다. 좀 일찍 죽느냐 아니면 좀 늦게 죽느냐의 차이이고, 병들어 죽든 늙어 죽든 아니면 사고로 죽든, 자기와 가까운 사람이든 상관없는 사람이든, 언제가 되었던 이별을 하게 마련이라 화수의 어머니 역시도 그중 한 사람이고, 좀 일찍 이별을 맞은 것뿐이라고 생각을 하면 굳이 마음에 담고 신경을 써야 할 일도 아니었건만 수연은 그러하지 못했다.

 

사실 화수와 수연은 서로가 정식으로 사귀자는 얘기를 한 적도  없었고 다만 사랑의 고백도 아닌, 우연한 만남에서의 화수의 갑작스러운 대시에 싫지 않은 수연의 호응으로 만남이 이루어졌고, 그 만남이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만남으로 이어져 온 것이었다.

 

". 좋아요. 수연씨 덕에 오랜만에 한정식 요리를 제대로 먹어볼 수 있겠네요."

 


길어지는 수연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화수가 수연의 말에 호응했고, 그 말은 잠시 후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일어나 수연이 말한 한정식집으로 발걸음을 향하도록 만들었다.

 

수연의 말대로 한정식집은 카페에서 나와 같은 골목 안으로 몇 발자국 더 들어가니 보였다.

오래된 기와 고택을 리모델링해서 깔끔하게 만들어 놓았는데, 눈에 보이는 식당 모습 못지않게 나오는 반찬이나 요리들도 정갈하고 맛깔스럽게 보여 음식에 정성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코스 순서에 따라 하나하나 준비되어 나오는 식사를 하며 화수와 수연은 화수가 하는 일 얘기와 음식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한참 동안 대화를 더 이어나갔다.

 

문화의 거리 뒷골목에 서서히 어둠이 내리고, 가로등이 환하게 불을 밝힐 때까지 천천히 서로를 마주 보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던 두 사람이 같이할 수 있는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 마침내 세 번째 만남을 마칠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골목길 보도블록에

딱따구리가 집을 짓고

해거름에 서둘러 둥지를 찾으면

남자는 신발 뒷굽을 치켜들고

작별 인사를 해요

 

헤어질 시간이어요

아쉬움은 뒤를 돌아서고

그리움은 슬픈 표정을 짓네요

만남은 짧고

이별은 늘 길었어요

 

만남이 짧은 날은

하루해도 짧아

살찐 땅거미의 키가 자라고

해그림자는 짙은 눈썹으로

서녘의 산을 올라요

 

이제 헤어질 시간이네요

 

- 이별의 시간 -




1 Comments
l인디고l 2021.11.03 10:43  
네번째 만남을 기대하며,,,오늘도 즐독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