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의 사랑 에세이 25

수필, 소설

민병식의 사랑 에세이 25

제임스 0 190

2022 제14회 임란의사(壬亂義士) 추모 백일장 일반부 산문 장려상


[에세이] 귀감(龜鑑)
민병식

머리에 눈송이가 수북이 쌓인 듯 흰 머리가 늘었다. 예전에는 흰머리 한 가닥이라도 보이면 무슨 큰일이라도 난듯 바로 뽑아버리곤 했는데 지금 그랬다간 머리카락이 몇가닥 남아나지 않을테니 한올 한올이 소중하다. 가는 세월, 오는 백발이라더니 꼭 그 짝인데 거울에 비춰보니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 세월이 흐르면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흰 머리가 느는 것이 당연한데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피부까지 거칠하고 탄력 없는 느낌이다. 잡힌 주름 사이로 세월이 흐름이 갯골을 만들고 그 사이로 애처로움이 흐른다.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에는 따라오지 말라고 해도 꼭 따라오는 그림자같은 몇 가지가 있으니 바로 나이 듦을 알리는 신호, 그 중에 주요 증상 몇가지를 들자면 노안, 뱃살, 흰머리, 새벽 잠 없어짐 등인데 노안은 안경을 써야 보이는 것도 있고 벗어야 보이는 것도 있어서 번거로운 불편을 가져온다. 뱃살은 젊었을 때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쪄서 왜 이리 말랐나고 많이 좀 먹으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는데 지금은 물만 먹어도 배가 나오고 걸어도 걸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나마 노안은 안경으로 버티면서 대충 타협을 봤고 지금은 사투 중인 뱃살 뒤로 바로 흰 머리가 찾아온다. 이것 이외에도 새벽 잠이 없어지는 과정을 가끔 겪고 있는데 밤 열두시에 자든 새벽 한시에 자든 희한하게 새벽 무렵 꼭 눈이 떠진다. 그 때마다 하릴없이 이 생각 저 생각 잠을 청해 보지만 그럴수록 또렷해지는 정신,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쫓아낼 도리가 없는 불청객이다. 결국 그런 날은 출근 후에 엄청난 피곤이 몰려오는데 입안은 꺼칠하고 눈은 침침, 온 몸이 찌뿌둥하다. 결국 점심을 먹고 자리에 앉아 눈을 붙이는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날이 적다는 것을 뇌가 기억하는건지 깨어있고자 하는 몸의 신호가 가멸차다. 자연의 섭리라면 받아들여야 겠지만 낮에는 비몽사몽간인 날이 있으니 이것도 참 못할 노릇이다.

단골미용실로 향한다. 검은 머리 시절부터 흰 머리 섞인 지금까지 내 머리를 깎아주는 단골 헤어디자이너에게 상담을 요청 한다.

"나 염색 해야 해요?"
"염색하면 깨끗하고 팍 젊어지긴 하는데 한 달에 두 번은 하셔야 해요. 안그러면 지금보다 더 지저분해지고 흉할 수도 있어요."

갈등이 생긴다.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서 한 달에 두번 염색을 할 것인가, 아님 이대로 버틸 것인가. 어디로 가야 할까. 두 갈래 길에서 헤매고 있다.

''그런데 지금도 괜찮으세요 흰 머리가 워낙 자연스럽고 젊어 보여서 그 나이로 안보여요"

그냥 의례적인 멘트겠지만 한결 기분이 나아진다. 일단 염색을 한다는 자체가 나이가 들어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해 하는 것 아닌가. 최대한 버티어 보고 하다 하다 안되면 그때 하든지 아님 이대로 희끗희끗한 매력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점점 흰머리는 늘어날 것이고 결국 언젠가 는 염색을 포기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갈등을 유발하는 경계선에서 영원한 젊음을 흉내 내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중년을 선택하기로 했다. 서글픈 블랙보다는 당당한 그레이다.

젊은 날의 윤기는 사라지고 반 백의 머리가 다 되었지만 흰 머리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흔적이고 검은 머리는 앞으로 살아가야할 시간이라고 본다면 나의 흰 머리는 앞으로 살아갈 검은 머리 들 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나이가 든 다는 것은 계절의 순환처럼 삶의 순리를 받아들이는 것, 당당한 그레이를 선택하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렇다. 뭐든지 생각하기 나름이니 겨울을 봄처럼 가을을 여름처럼 젊게 중년을 살면 될 것이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