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의 사랑 에세이 26

수필, 소설

민병식의 사랑 에세이 26

제임스 0 259

제21회 국제 지구사랑 작품공모전 글짓기 가작

[에세이] 돌(石)의 귀향
민병식

최근 가장 고상한 취미 중의 하나라는 수석 수집과 감상에 대해 배우게되었다. 젊은 시절에는 그까짓 돌 하면서 전혀 관심도 없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고향마을에서 늘 산과 강을 벗삼아 자란 환경탓인지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영향을 미치는지 길가의 돌 하나도 정겹고 애정이 간다. 수석은 보통의 짱돌이 아닌 재질이 특이하거나 문양이 특출난 돌인데 그 돌에 새겨진 풍경이나 사물을 보노라면 산과 강, 들판, 나무 등 자연의 모습이 담겨있고 특히, 돌 냄새를 맡으면 독특한 물 냄새가 스며들어 그리 좋을 수가 없고 작은 자연을 집안에서 느끼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 아마 아파트 베란다에서 정성스레 난초를 키우거나 화분에 예쁜 꽃을 키우며 기뻐하고 좋아하는 그런 마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수석은 목숨 수자를 써서 수석(壽石)이라고 하는데 물과 돌로 이루어진 대자연의 경치를 일컫고, 수석(壽石)의 수(壽)자는 수려하다는 뜻을 갖고 있어 '수려한 돌'이라는 뜻이 된다. 수석은 오랜 세월에 걸쳐 온갖 풍상을 겪고 단련의 과정을 거쳐 시간을 품은 고색창연한 맛이 있다, 기나긴 시간 동안에 색 질이 변하여 세월의 때깔이 입혀진 유구한 매력이라고 할까. 돌이 품은 내용과 정직함은 오랜 세월에 걸쳐 구르며 온갖 사연을 담은 맛이고 어리고 앳된 모습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성장하는 사람처럼 기나긴 시간 동안 숱한 이야기를 품고 산에서 흘러 흘러 강물을 따라 내려온 산전수전 다 겪은 인생의 맛이기도 하다. 또한, 산골짜기에 흐르는 물의 경치, 즉 돌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가의 경치를 표현할 뿐만 아니라 점점 미학적인 경지로 발전되어 그림으로 치면 추상화처럼 날로 그 분야를 넓혀 가고 있다. 또 종류도 점차 다양화되어 물형석, 무늬석, 색채석, 추상석, 미석 등의 다양한 장르가 있다. 


수석에는 몇 가지의 중요한 요소가 있다. 우선 아름다움의 분야이다. 누가 보던 간에 누구나 공통적으로 감탄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아름답다고 느껴야한다. 문양을 통해 색깔을 통해, 형태에 있어서 개성이나 특이성이 있어야 하고 보는 이에게 신비감을 주는 돌이 좋은 돌이다. 다음은 단단한 석질의 돌이 좋다. 영구불변함의 단단함을 가치로 하고 있기에 뾰족한 물체로 긁어도 쉽게 변하지 않는 석질을 최고로 친다. 쉽게 부스러지는 돌은 그만큼 가치가 낮다. 왜냐하면 돌에 그만큼 불순물이 섞여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바로 순수함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색깔이다. 짙고 그윽하고 중후한 색깔이 예로부터 좋은 돌로 여겨져 왔는데 거기에 더하여 요즘은 진달래 석, 칼라석 등 화려한 원색의 색깔도 많이 나온다. 예전에는 기품 있고 어두운 검정색 계열의 돌이 각광을 받았으나 요새는 밝은 색도 인기가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마지막으로 자연미를 빼놓을 수 없다. 인공의 미를 가미한 것은 수석이 아니다. 즉 인위적으로 돌을 깎거나 색깔을 물들인 돌은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수백 년 수천 년 물속을 흘러 흘러 강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오면서 아주 미세하게 수마가 되고 마찰이 되어 자연을 닮은, 인간을 닮은 모습이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니 바로 생동감의 아름다움이라고 하겠다.

수석의 입문은 관심에서 시작된다. 수석 산지를 찾아다니며 탐석을 하고 채취를 하여 이물질을 제거하고 햇빛과 비를 맞혀 양석을 한 후에 좌대나 수반에 앉히고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다.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수석이 되는 과정은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날카롭고 투박한 돌이 깨져 수백 킬로미터의 산비탈을 구르고 강줄기를 따라 눈에 보이지 않게 조금씩 마모되어 아름다운 형상과 색깔의 수석이 되듯이 빈 손으로 태어난 사기가 아동이 되고 청소년기를 거쳐 어른이 되기까지 수많은 희로애락 거치고 숱한 일들을 겪어내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이 비슷하다.

어쩌면 난 지금까지 마음은 원치 않는데 그저 눈에 보이는 행복의 조건들을 충족하기기 위해 많은 것 들을 포기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손에 쥔 모든 것을 놓고 떠나는 허욕의 인생인 줄 알면서도 극히 인간적인 마음으로, 매사에 분별없이 일어서는 욕심으로 나의 삶은 중요하고 다른 이의 삶에는 가볍지 않았는지 돌이켜본다. 잘 살아한다는 명제를 내 기준으로 정해놓고 과도한 욕심으로 범사가 주는 행복과 기쁨을 놓치는 우를 범하며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라는 핑계로 좀 더 나은 삶이라는 끝이 없는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황망히 뛰어다니는 나를 보게 될 때가 있다.

이미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으면서 가진 것이 적다고 투덜거린 불평과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버둥거리는 불안과 눈에 보이지도 않는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다가가 도우려 않고 내 만족을 위한 우쭐한 마음이었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묻는다. 첫 마음이 끝 마음이 같도록 사랑하듯 누군가를 위해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는 사랑을 욕심내는 나였으면 한다.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는데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후회라는 쓴 교훈을 되새기지 않도록 철들 나이가 되었다. 나의 삶도 중요하고 다른 이의 삶도 중요하다. 삶의 시간을 먹는 것은 나이를 먹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이 깊어질수록 눈에 보이지 않던 것 들이 서서히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즈음, 욕심으로부터의 자유가 필요하고 또 다른 욕심이 필요한 때인 듯하다.

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자연에서 살고 자연이 시키는 대로 움직일 뿐이다. 산이든 들이든 물속에서든 위에서 아래로 흐를 뿐 역행하는 법이 없다. 그 돌 들이 예쁜 수석이 되기도 하고 또, 강가에 남아 있는 이끼 낀 돌이 되기도 하지만 반드시 수석이 되어야한다는 법은 없다. 그냥 차돌도 되고 땅속에 박혀 있거나 물속에 있어서 안보이더라도 존재만으로도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기에 모두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묵묵히 주어진 자리에 감사하고 만족하면서 욕심 부리지 않는 삶,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수석의 삶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내 삶은 꼭 남들이 알아주는 수석이 되지 않아도 좋다. 사람들이 탐내는 돌이 아니라도 이미 빼어난 수석의 삶은 내 마음에 달려 있으니까 말이다.

채비를 챙긴다. 그 동안 마음을 나누었던 돌 들을 제자리로 돌려보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자기 자리에 있을 때 가장 빛이 나는 돌을 어찌 나 혼자 소유하고 있을까. 어쩌면 나는 자연을 즐긴다는 이유로 돌의 터전을 짓밟고 파괴하여 억지로 내 소유물로 만들고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했을지 모를 일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직접 가서 보고 즐겨야할 것을 내 욕심에 억지로 강탈한 것에 대해 지구에 사죄하면서 서 하나하나 작별인사를 한다. 그들의 고향인 강으로 돌려보낸다. 말없이 아름다운 돌들로부터 욕심을 버리는 법과 자연에 대한 사랑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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