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굽는 여인 -한애자 소설집 3

수필, 소설

빵 굽는 여인 -한애자 소설집 3

소하 0 292
5fea754a4125396fe8e4b3e3605faba9_1630221036_96.png 

쌍화차 친구

§1회분 3.§
<<포랜컬쳐-한애자 소설 //연재>>
“어머, 그래요?”
전애희는 민상수의 이름이 화재로 드러난 것에 대해 당황했으나
애써 태연한 척하였다.“잘생겼잖아! 분위기가 있고
왠지 여자들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잖아. 총각 때 여자깨나 울렸겠어.
안 그래?”그녀는 상기된 표정으로 전애희를 쳐다보았다.
“글쎄요, 어떻게…….” 전애희는 매우 놀랐다. 자신의 뇌리에 한 남자의 영상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그 사나이는 ‘여자깨나 울리는 남자’로 통하였던 것 같았다.
더군다나 들려오는 이미지의 영상과 외모, 성씨마저도 ‘민’ 씨라서 아연해졌다.
‘설마 그가!…….’상수와 상현은 다른 이름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옛 모습이 가슴에서 잔잔히 물결치기 시작하였다.
‘세상에는 참으로 닮은 사람이 많구나!’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으며 그냥 묻어두려고 애를 썼다.“자기는 좋겠네.
같은 부서라서 가까이서 매일 볼 수 있잖아!”
김 선생은 계속 지껄여댔다.“자기 미녀잖아! 선남선녀끼리 잘 만난 것 같아!”
인물이 없어서 자기는 사십이 넘도록 결혼을 못했다는 그런 인상이었다.
“자기와 너무도 어울려 보이는 이미지라서 말이야!”“농담 그만하세요!”
전애희는 자신도 모르게 화를 내며 차갑게 내뱉었다.
“왜 화났어? 그냥 해보는 소린데…….”
김춘화는 잠시 주춤하더니 누그러졌다.
좀 푼수 끼가 있는 자신이 쓸데없는 상상과 부질없는 소리를 지껄였다고 본인도 한심하게
여기는 듯하였다. 어느덧 그들은 백화점 안으로 들어섰다.“건강식품코너로 먼저 가봅시다.
마시던 차가 떨어졌거든!”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랐다.
김 선생과 동행하는 백화점 쇼핑은 자신에게 좀 어색하였다.
전애희는 백화점 쇼핑을 늘 혼자 즐겼다. 자신만의 비밀처럼 스타일을 간직하고픈 심리였다.
자신이 즐기는 의상이나 화장품이 어느 회사의 제품이고
어느 브랜드를 입는다는 여교사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도 싫어서였다.
바겐세일이 있는 토요일 오후에는 마음에 맞는 여교사들은 삼삼오오 떼를 지어 쇼핑을 하러 가곤 하였다.
그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나 자신이 무슨 심리적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잠시 자각증세를 보이다가도 그런 모습이 자기답고 자유로웠다.
‘내가 A형이라서 그런가? A형은 숨은 비밀이 많은 타입이라고 하던데!
’이렇게 되뇌고 있을 때였다.“뭘 드릴까요?”
“네, 쌍화차 주세요!”“아, 네, 어느 걸로…….”
점원은 여러 모양으로 예쁘게 포장된 쌍화차 종류를 내밀며
김 선생에게 제품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웬 쌍화차?”“응, 아버님께서 즐겨 드시거든.”“저기 오미자차랑 같이 넣어 주세요!”
“쌍화차는 몸에 좋은가 봐요. 아버님은 늘 쌍화차를 대놓고 드시거든요!”
“그럼요. 한방재료가 들어가서 한약과 같은 성분의 효과로 몸에 보약 효과를 내주고 있지요.”
“꼭 한약 냄새가 나서 한약 같아요. 그런데 왜 계란을 넣어서 드시는지 모르겠어요.
계란의 비린내 때문에 비위가 상할 것 같은데 아버님은 잘 드셔요.”김 선생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거야 옛날에는 먹을 것이 귀하여 계란을 넣어 먹으면 몸보신이 된다고 얹어 드셨거든요.”
점원은 자그마하게 포장된 것을 집어 내밀며 말했다.“이걸 얹어 드시면 훨씬 영양과 맛이 좋습니다.”
그것은 쌍화차 위에 얹어 먹는 고명이었다.“아, 고명만 따로 파는 것도 있군요? 한 봉지 주세요!”
“더 필요하신 것 없으세요? 곁에 계신 분은?”“아, 참. 전 선생, 어때 쌍화차 잘 드시나? 내가 선물하고 싶은데…….”
“아, 좋아하긴 해도 나중에 구입하지요.” “아냐, 서로주고 받아야 정이 생기는 거야.
그동안 전 선생에게 선물 한 적이 없어서 미안했는데 잘 되었네.”
김춘화는 같은 걸로 쌍화차를 주문하였다.“자기 말이야, 사람이 고전틱 해서 쌍화차 분위기와 잘 어울려.”
전애희는 그냥 피식 웃음이 나왔다.
흔히 권하는 커피나 녹차도 아니고 쌍화차 분위기로 몰고 가는 것이 심상치가 않았다.
“저기 인삼사탕 한 봉지 주세요. 우리 김춘화 선생님 잘 드시잖아요.”“아니, 어떻게 알았어?”
“항상 선생님 테이블 위에 놓여 있잖아요.”전애희는 가끔 업무 차
그녀의 자리에 다가가면 그는 손에 한두 개씩 인삼사탕을 쥐어주곤 하였다.
그들은 쌍화차와 인삼사탕의 교환으로 서로의 친분을 돈독히 해주는 행사를 치렀다.
요금을 계산하고 쇼핑백을 들며 백화점 출입구로 나왔다. 김춘화는 약간 아쉬워하는 듯했다.
“시간 있으면 오늘 날씨도 좋은데 호수공원이나 한 바퀴 돌고 갈까!
”전애희도 싫지는 않아 그들은 호수공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4월 초의 날씨라서 제법 쌀쌀한 기운은 사라지고 봄기운이 완연했다.
햇빛이 따사하게 봄을 단장하며 산천초목을 애무하듯 하였다.“민 선생 말이야.
여자들이 그렇게 유혹을 해도 끔쩍하지 않는 형인가 봐!
전번 학교에서 아는 교사가 그러는데 민 선생을 짝사랑했던 여선생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는데?”
수다는 또 이어지기 시작하였다.“푸하하하하…….”전애희는 어이가 없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유부녀들이 웬 짝사랑!”“유부녀뿐만 아니라 노처녀들도 그 선생을 사모했다던데?”
전애희는 계속 웃으며 애써 긴장된 자신의 감정을 감추며 태연한 척하였다.
그들은 곧 호수 쪽으로 서서히 거닐기 시작하였다. 잠시 말없이 걷다가, 봄의 풍경에 시야가 사로잡혔다.
“어머? 이젠 완연한 봄이네!”벌써 푸른 잔디 위에 파릇파릇 잔디가 솟아나고 봄꽃들이
그 빛깔을 단장하며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이곳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호수라면 얼마나 좋을까!”
감상적인 김 선생의 목소리였다. 전애희는 호수를 내려다보았다. 물 밑에서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었다.
두 물고기가 서로 입을 마주보고 물거품을 내더니 그 중 하나가 홱 돌아서서 사라졌다.
 남은 물고기도 같은 방향으로 그 물고기의 뒤를 쫒아 헤엄치듯 내달았다.“춥지 않을까?”
“글쎄요, 얼음 밑에서도 물고기들은 살잖아요. 마치 강태공의 낚시처럼!”
“강태공은 물고기를 낚은 것이 아니라 세월을 낚았다는데 이 노처녀 벌써 마흔을 넘겼으니
이제 무엇을 낙으로 삼으란 말인가!”넋두리 하듯 김 선생은 한숨을 쉬고 전애희의 옆얼굴을 가만히 훔쳐보았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얼굴이었다.“자긴 늙지도 않은가 봐! 주름도 하나도 없네. 질투 나게 말이야.”
“왜요. 가까이 보면 주름도 늘고 잡티도 많아요!”
“난 인물이 없어 이렇게 노처녀로 늙어가지만 자긴 남자깨나 울렸겠어. 같은 여자인 나도 반하겠는데!”
“뭘요, 이젠 사십이 넘었는데요.”“어쩜, 삼십대 같아. 어디 러브스토리 좀 들려 줘. 심심한데 말이야!”
봄처녀처럼 사랑하는 이성을 그리워하는 김 선생의 심정이 좀 애처로워 보였다.
봄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민상수를 만나서 그런지 그녀의 가슴은 사랑의 물결로 출렁거리고 있었다.
자신을 사십이 넘은 노처녀라고 푸념하는 것은 처음 듣는 소리였다.
언제나 당차고 밝고 씩씩하게 생활하는 것처럼 보였다.
결혼에 대해서도 무관심해 보였는데 러브스토리를 운운하는 걸 보니
몹시 외롭고 심적인 사랑의 생동감이 반짝이고 있는 듯하였다.
“자긴 정말 미녀라서 남자들이 많이 따라다녔겠어!”“미녀도 차이기도 하는데요, 뭘!”
전애희는 자신도 모르게 불쑥 쏟았다.“설마, 전 선생이 차였겠어!”“……!”잠시 침묵 속에 잠겼다. <<< 다음호에 이어서,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