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정佳野井 수필

수필, 소설

가야정佳野井 수필

포랜컬쳐 0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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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호 시인



엄마의 장독대  -김재호 시인. 수필가


오일장이 열리던 날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유난히 군것질을 좋아하는지라 

아이들이 어릴 땐 과자를 나눠 먹던 일이 종종 있곤 했다.

매번 종합검진 때마다 중성지방이 지나치게 높아서 식단에 신경을 쓰고 있던 터라

빵이나 과자류는 솔직히 부담스럽기에 그나마 부담이 적은 옥수수

뻥튀기를 사서 궁금할 때 꺼내먹곤 했다.


모처럼 선선하고 하늘은 한층 높던 오후, 뒷짐 지고 장터가 열리는 공터에 갔다.

추위는 물러났지만 때가 때인지라

몇몇 분들만 마스크로 무장을 한 채 구경을 나오셨다.

장사하시는 분들도 유난히 적게 나오셨는데

경기가 안 좋다고 연일 뉴스에 나오더니

오일장에도 영향을 끼쳤나 하는 생각이 퍼뜩 스쳐 간다.

즉석 두부를 만드시는 분, 생선 가게, 야채 가게,

과일가게, 머리 핀등 잡화, 전통 과자를 들고 오신 분,

양말가게 등 줄지어서 호객하는 소리가정겹다.

옥수수 뻥튀기를 사고 어슬렁거리다가 매운 어묵도 사고 도넛도 샀다.

반찬가게를 지나다가 문득 집에 김치가 떨어진 것이 생각이 나서 배추김치를 샀다.


저녁 식사시간

막 지은 따끈따끈한 밥에 낮에 사 온 김치를 식탁에 올렸다.

유난히 김치를 좋아하는 아들

'아우 짜다.' 하며 찡그렸다.

아내는 식단을 저염식으로 하므로 식구들은 나트륨에 민감하다.

김치는 손도 안 대고 식사를 마친 아들은 어디서 샀냐며 투덜거렸다.

김치를 사 온 죄인인지라.

고민 끝에 무를 썰어서 섞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간이 짜게 되면 무를 듬성듬성 썰어서

구석구석에 넣어두시던 엄마의 손길이 생각이 난 것이다.


엄마는 음식 맛 좋기로 소문난 부안댁이시다.

부안은 절경이 많고 특히 변산반도나 격포는 아름다운 어촌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또 하나,

강경의 젓갈시장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예나 지금이나 부안의 젓갈은 알아준다

간혹 변산반도에 갈 일이 있으면 으레 곰소항을 기웃거리기 마련이다.

타지에서 좋은 젓갈을 사기 위해

먼길 마다하지 않고, 감칠맛 나는 젓갈정식이불티나는 이유가 있다.


고향집에서 한참을 걷다 보면 '해창'이라는 작은 어항이 있다.

(지금은 새만금 방조대로 인해 뭍으로 변했지만)

엄마는 그곳에서 철마다 양철 대야에

젓갈 거리를 사서 그 먼길을 논길 따라 밭둑 건너 몇 번을 쉬어오셨을까.

아침 일찍 나가시면 해가 중천에야 집에 오셨는데 머리도 아프고

허리도아프다며 끙끙 앓곤 하셨는데도 평생 그 일은 빠뜨리지 않으셨다.


그날은 비린내가 담장을 너머 온동리가 우리 집 젓갈 담그는 날임을 알아차렸다.

장독대 커다란 항아리를 깨끗하게 씻어서 햇볕에 바짝 말린 다음에

굵은소금과 젓 거리를 켜켜 담으시고는 맨 위에는 하얗게 소금으로 마감을 하셨다.

이때 엄마는 뭐라고 중얼중얼 속말을 하셨는데 젓갈이 맛깔나게 잘 익으라는 주문을 걸었으리라.


아부지 제사나 명절이 다가오면 커다란 조기며

생선을 장만하여 장독에 소금으로 염장하여 저장하곤 하셨다.

상 물린 뒤에 엄마는 한 점씩 뜯어서 밥 위에 얹어주셨는데 그게 꿀맛이었다.


제사 때 말고는 구경조차 힘든 조기가 지금은 마트에 가면 사철 볼 수 있으니 참 세상 살기 좋아졌다. 


엄마는 김장 때나 김치를 담글 때는 가마솥에 젓갈과 약간의 물을 붓고

펄펄 끓여서 그 국물을 채에 걸러서 식힌 다음 양념을 버무리셨다.

김장 전날이면 눈이 맵도록 마늘과 생강을 깠는데 젓갈 달이는 냄새가 참 좋았다

집을 떠난 이후로는 여즉 젓갈 달이는 냄새를 맡아본 적이 없으니

아마 지방마다 젓갈 쓰임이 다른가보다 엄마의 장독대에는 종류별로 젓갈이 항상 있었는데

반찬이 궁할 때는 잘 익은 젓갈에 마늘을 다지고 쪽파를 잘게 썰어서 참기름 한 방울 톡 떨어뜨려서

버무려 놓으면 아주 맛나게 밥 한 그릇이 뚝딱이었다.

지금도 간혹 식당에서 젓갈 반찬이 나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담날 날이 밝자마자 마트에서 큼직한 무 하나를 사서 깨끗하게 씻은 다음

절반을 뚝 잘라서 한입에 먹기 알맞게 얇게 저며서 큰 볼에 사 온 김치를 넣고 무랑 골고루 섞었다.

마치 내가 김치를 담그고 있는 것처럼 폼은 그럴싸하다.

잘 버무린 김치를 그냥 냉장고에 넣으면 무가 익지 않을 거 같아서 주방에 두고는 익기를 기다렸다.

하룻밤 지나자 뚜껑이 볼록하게 튀어나온 폼새가 발효가 되나 보다.

맛을 보니 아직은 무의 매운맛이 남아있어서 좀 더 두기로 했다.

낮에 한 번 더 위아래 뒤집어주고는

하룻밤을 더 지나고 나니 이젠 아삭하면서도 아주 적당히 잘 익은 맛이다.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아내의 손맛에 익숙해진 가족들

남이 해놓은 음식엔 아무래도 익숙지 않다 보니 우리 가족은 외식이 별로 반갑지 않다.

어쩌다 아이들 성화에 외식을 하더라도 입안이 찜찜하여 집에 와서는

깔끔한 것으로 후식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까탈스러운 가족이기도 하다.

뭐니 뭐니 해도 아내가 만들어준 음식이 최고였음을 알아가며 잊을 수 없는 엄마,

그 손길과 항아리 가득하던 장독대, 정지와 우물 그리고

굴뚝에서 모락 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던 고향 마을이 많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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