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선의 말하는 수필 11

수필, 소설

박금선의 말하는 수필 11

소하 1 2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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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금선 시인



내 고향 석담을 다녀와


                         박금선

웃골의

천일 농장 발발이 짖는 소리

구릉 들판이  들썩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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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된

나락은 고개를 숙일까 말까 고민 중에 서 있다


혼자

석담에 앉았다

배둔 쪽에서 건들바람이 분다

아직은 덥다


기분이

나쁜지 입이 서너 발이나

튀어나와 끈적끈적하다


배둔 장날

어머니의 박하엿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다

노랑머리 여자아이가

돌무덤에 코를 박고 잠이 들었던

그 석담이다


우리들의 단골 사랑방이었다

삼백 살이 넘었다


추억의 냄새들이 코앞에 줄을 선다

보리쌀 삶는 냄새

숯불 위의 창자 터진

꼼꼼한 갈치 굽는 냄새

온 동네를 진동한다


구릉 들판을 둘러본다


베트남

마누라는 도망가고

대출 융자금

빚에 찌들어 술병을 다리에

끼고 살다 술병으로 작년에

별이 된 동열이의 소 농장만

덩그러니 서 있다


그렇게

많던 소들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다 팔았을까


엉덩이에

소똥 칠갑을 한 소 한 마리

남아있다


눈물이 고인 희멀건 눈으로

지푸라기를 질겅질겅 십고 있다


늙어서일까

영양이 부족할까

척추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석담은 이제 늙었나 보다


내가

가는지 오는지

반겨 주지도 않는다


헝클어진 허연 수염만

늘어 드린 채

턱을 괴고 머리만 긁적인다


내가

어릴 때 석담은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이나 다보탑보다

웅장하고 우러러 보였다


아기를

못 낫거나 집안에 우환이 들면

어른들은 꼭 석담을 찾았다


느릅나무 허리에는

고운 짚으로 왼쪽으로

꼰 팔뚝만 한 굵은 새끼에

오색천

참나무 숯

빨간 고추를 달았다


부처님 예수님보다

한 수 위가 석담이었다


무엇이든

다 들어 주는 우리 마을의

유일한 수호신이었다


내  친구

석규 현욱이

봉연이 희곤이 형수

다섯 명이나

왜 죽게 내 버려뒀냐고

생떼를 써 본다


이제

힘이 없나 보다

내가 묻는 말에 답이 없다


거무튀튀

붉은빛을 잃어 가는

팔월의 장미꽃 이마에는

상처 난 붉은 그리움이 묻어 있다


계단을 내려온다


하얀

수건을 눌러 쓴

참나무 껍질 같은

어머니의 손 비비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 온다


사그락사그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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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정윤칠 작




1 Comments
손가 2021.08.30 21:55  
감명 깊게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