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완식 연재 詩소설 - 달맞이꽃(4)

수필, 소설

정완식 연재 詩소설 - 달맞이꽃(4)

방아 1 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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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 여자

 

그에게서 일백한 번째 알람톡을 받은 날 아침, 수연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여덟 시를 조금 지난 시각에 전철역을 빠져나와 그녀의 직장인 대학 정문을 지나고 있었다.

 

도로 좌우로 늘어선 가로수는 엊그제 내린 봄비를 맞은 뒤 초록의 잎들이 더욱 짙은 색을 자랑하고 있고, 도심 속의 교정에 날아든 새들의 지저귐이 그녀의 아침을 더욱 상쾌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녀의 사무실이 있는 본관 건물까지는 교정을 종으로 가로지르는 주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이어져 있는 조류관과 건학기념관, 인문관, 소운동장 등을 지나 십여 분 이상을 걸어야 했다.


집을 나와 걸어서 버스정류장까지 그리고 버스를 타고 전철역까지, 다시 전철에서 내려 그녀의 사무실까지 걸어서 자리에 앉기까지 오십 분 이상을 길 위에서 보내야 했지만, 그녀는 지치지 않았다.


화수가 오늘 아침 그녀에게 보내준 일백한 번째 알람톡은 그녀에게 힘을 내게 해주는 것 같아 수연은 속으로 새삼 화수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들을 수 있어 고맙다

촉촉한 빗소리를

조용한 노래를

은은한 웃음을

그리고 날 불러주는 너의 목소리를


볼 수 있어 고맙다

파란 하늘을

초록의 나뭇잎을

활짝 핀 꽃을

그리고 내게 보내주는 너의 미소를


내게로 와줘 고맙다

바람이

꽃이

봄이

그리고 그 무엇보다 네가

 

고맙다 -



수연은 늘, 사무실에서 같이 근무하고 있는 직원 중에서 제일 먼저 출근하는 편이라 사무실에 들어서는 그녀를 반겨주는 사람도,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없이 썰렁했다.


그녀는 조명이 꺼져있는 사무실에 불을 켜고 방금 다녀간 듯한 미화원 아주머니의 진한 분냄새와 젖은 바닥에 섞인 희석된 락스 냄새, 걸레 냄새 등이 뒤섞인 사무실의 환기를 위해 창문부터 열어제쳤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데스크탑 PC의 전원을 켜놓고, 부팅이 되는 시간 동안 탕비실로 자리를 옮겨, 그녀가 가져다 놓은 그녀의 전용 머그잔에 일회용 캡슐커피를 한 잔 추출해서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바라만 보아도 아직 삼키지도 않은 쓴맛이 목구멍을 자극할 것만 같은 검은색과 황금 갈색이 어우러진 블랙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고,


그녀는 부팅이 된 데스크탑 PC를 열어 맨 먼저 대학 인터넷 싸이트 인트라넷을 통해 그녀에게 온 이메일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오늘 해야 할 업무리스트를 체크한 뒤 대강 머리 속에 집어넣는다.


그러자 그제서야 다른 직원 한 명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며 수연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한기호씨였다.


한기호씨는 수연보다는 일 년 먼저 직원으로 채용된 직장 선배이자 학교 선배였다.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복학을 해 대학원 석사과정까지 마치고 수연과 마찬가지로 가정형편을 이유로 학업을 계속 이어나갈 수 없어 행정 직원이 되었다고 했는데, 나이는 수연보다 네 살 많았지만 비슷한 이유로 들어온 수연을 애틋하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후배임에도 깍듯하게 예를 갖춰 대해주었고,


업무 선배로서 이것저것을 잘 챙겨주고 수연이 모르는 일들은 친절하게 알려주기도 하는 믿음직한 옆자리 동료이기도 했다.


한기호씨가 자리에 앉아 업무 준비를 하는 동안, 수연이 근무하는 행정실의 책임자이자 척 하면 삼천리라며 대학의 모든 행정 업무를 꿰뚫고 있다고 자부하는, 대학 터줏대감이라 할 수 있는 안재덕 실장을 비롯해 행정실의 살림꾼이자 책임감이 강하고 늘 부지런해서 일찍 출근하는 유선미 대리와 정수표 대리가 그 뒤를 이어 역시 행정실의 베테랑이라 할 수 있는 백성수 차장과 양병완 과장이, 그리고 둥글둥글한 성격에 늑장을 부리다가 지각을 일삼으면서도 여유를 부리고, 행정실에 웃음을 제공하는 조태호 부장까지 나머지 직원들도 속속 출근하였고,


수연은 선배 직원들이 사무실에 들어설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가벼운 목례와 함께 "안녕하세요?"를 반복했다.


수연의 직장 동료 대부분은 그녀의 대학 선배들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학교에 대한 각별한 애착과 직장 동료로서의 서로에 대한 애정은 다른 어느 직장과 비교해보아도 두드러질 만큼 두터웠고 팀웍 또한 좋았다.


그도 그럴 것이 수연과 안재덕 실장을 비롯한 그녀의 동료들은 직장인 대학 내에서 일어나는 각종 이벤트와 행정적인 일들은 모조리 지원해주어야 하는 광범위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그 일이라는 것이 1천여 명이 넘는 교수 및 교직원들과 15천여 명에 이르는 학부와 대학원의 재학생,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휴학생, 졸업생들과 관련된 행정 실무까지,


또한, 40만 평에 이르는 넓은 캠퍼스 이곳저곳에 대한 교정관리와 환경과 미화 등의 용역관리, 캠퍼스 내에서  발생하는 제반 행정적인 문제들을 다 관리하고 다루어야 했고,


교무실과 재무실 등 다른 실의 직원들도 물론 있긴 하였지만, 특히 행정실의 업무는 광범위해서 단 여덟 명의 적은 인원으로 그 일을 다 하자면 개개인이 맡아서 하는 업무처리는 당연히 능숙해야만 했고, 서로에 대한 업무협조와 지원, 그리고 팀웍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매일 아침 반복되는 평일의 일상이, 수연에게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한정된 공간 속에서

이해를 함께하며

시공을 함께 사는 친구

 

한정된 가치 속에서

공유를 달리하며

협조와 경쟁이 공존하는 사이

 

네가 있어야 나도 있지만

네가 없어도 나는 있을 수 있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

 

나이와 직급은 비례하지만

능력과 승진은 꼭 비례하지는 않는

불평등 관계

 

그러나

가족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형제보다 더 울고 웃게 만드는 사람들

 

- 직장 동료 - 




1 Comments
l인디고l 2021.09.07 09:52  
너무 새롭고,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가족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형제보다 더 울고 웃게 만드는 사람들...직장 동료"
마음에 확 다가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