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선의 말하는 수필 12

수필, 소설

박금선의 말하는 수필 12

소하 2 2330

c6d6544f64aabfd8173601a49626f2f1_1630490803_87.png

                     박금선 시인



아버지와 소

   

             박금선


음매 

음매


점심때가

되면 소는 밖으로 나가고 싶어  꼬리를 위로 치켜들고 뿔을 소죽 통에다 쥐어박고  펄쩍펄쩍 뛴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50년이

넘은  초등학교  때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는 소를 몰고 산으로 풀을 먹이러 간다.


제일 처음 섬돌에다 소고삐를 푼다.


그다음은 별골이다.

쪽샘골

큰 바위 골

명치 미골

홍골을 거쳐 풀을 뜯어 먹고 나면 마지막 코스인 안이 뻔 등

평평한 곳에 소들이 도착한다.


친구들과

나는 미리 뻔 등으로 가

소가 오기를 기다리며 논다.


우리 동네는

시골이라도 동네가 컸다.

박 씨 집성촌이었고 가구 수가 200가구가 넘었다.


소는

몇십 마리가 무리를 지어 다닌다.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우리 소는 알아볼 수가 있다.


쭉 뻗은

잘생긴 뿔에 등에는

대문짝만한 흰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장이었다.


뿔싸움을 하면 1등이었다.

나를 닮아 소들과 잘 친하며 힘도 셌다.


다른

소들은 꼼짝을 못했고

늘 앞장을 서서 우리 마을의 소는 다 거느리고 다녔다.


나는

친구들과  공기놀이 오재미 놀이를 하며 신나게 놀았다.


소를 돌보는 게 아니라

놀이에 빠져

소를 보는 건 뒷전이다.


해거름이 되었다.


소들이

하나둘 안이 뻔 등에 모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우리 소가 보이지 않았다.


큰일 났다.


소고삐를 허리에 칭칭 감은 체  정신없이 소를 찾아다녔다.


낭떠러지에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을까 ?


녹명이나 구만 사람들이 소를 훔쳐 갔을까 ?


가시에

긁히고 넘어지고  깨지고 엉망이었던 무릎이


다시 피가 줄줄 흐르며

껍질이 벗겨지고, 엉망이었다.


홍골쯤

가니  갑자기 어두워지고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홍골은 귀신산 이다.


우리 동네 산 중에서

제일 숲이 우겨지고 응달이고 골짜기가 깊다.


큰 나무들이 많아 아기 울음소리도 들리고 귀신이  많이  나온다는 말을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무서운

생각이 드니 눈앞에


아기 울음소리

목 없는 귀신 

다리 없는 귀신 

눈알 빠진 귀신


온갖 귀신이  다 보이는 거 같았다.


포기하고


" 걸음아 나 살려라 "


하고

소고삐만 댕그라니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오늘 죽었구나 싶었다.


소는 잃어버리고 오재미 놀이만 하다 왔으니 오늘은 초상날 이다 싶었다.


집으로

와 혹시 소가 왔는지  마굿간으로 갔다 텅 비어 있었다  눈물이 났다.


땀이랑 

콧물 눈물이 뒤범벅되어 마루 끝에 걸터앉아 엉엉 울었다.


그러나

참 이상하다.


식구들이

아무도 꾸중이나 화를 내지 않았다.


어머니는

호롱불과 헌 옷가지와 가위를 준비하셨고 아버지는 바지게와 짚을 준비하셨다.


소를

찾으러 간다고

큰집 오빠

동조 오빠

또갑 오빠

저암 아지매가 우리 집으로 오셨다.

 

칠팔 명은 된 거 같다.


그런데

내가 가야 소를 잘 찾을 수 있는데 못 오게 했다.


2시간쯤 지났을까 ?


음매에

음매


하고  송아지 울음소리가 들렸다.


밖으로

뛰어나가니 아버지 바지게 위에는 예쁜 송아지가 앉아있었다.


너무 기뻤다.


소는

우리 박씨 종정 선조님들의 안이 벌안 큰 무덤 옆에 있었다고 했다.

탯줄이

달린 채로 송아지 등을 핥아 주고 있었다고 한다.


새끼를

낳을 땐 안전하고

비바람을 막아주는 큰 무덤가에  자리를 미리 잡아 놓는다고 했다.


무덤에 가려져 소가 보이지 않았나 보다.


가위는

탯줄을 잘랐고 헌 옷가지는 송아지 몸을 닦았고

짚은 송아지 밑에 깔아주기 위해서 가져갔다고 했다.


소가 영리하고

끈기가 있고 지혜롭다는 걸 그때 알았다.


지금도

소의 눈을 보며 아버지를

보는 거 같다.


소를 팔아 큰 언니가 시집 가던 날 

소 고삐를 들고 텅 빈 마구간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축 처진  두 어깨에는  소의 눈물이 흘러 내렸다.


뚝.


c6d6544f64aabfd8173601a49626f2f1_1630491023_49.png

                박금선 사진 作


*소가 뛰어 놀던 산

지금은 길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2 Comments
손가 2021.09.01 20:35  
너무 재밌어요^^
털털배기 2021.09.01 21:16  
9월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