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의 사랑 에세이 10

수필, 소설

민병식의 사랑 에세이 10

제임스 0 368

2021 제18회 서하 전국 백일장 차하 수상작

밥상
민병식

경기도 내륙 출신이어서 그런지 나는 바다 생선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남들이 맛있다고 잘 먹는 회는 물론이고 매운탕도 많이 좋아하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어머니가 비린내를 싫어하셔서 집에서 생선반찬 올라 올 때가 거의 없었고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동태찌게가 겨울철 밥상에 올라왔을 때가 생선을 맛볼 수 있는 시기였다. 그러나 생선을 선호하지 않는 내게도 희한하게 잘 먹는 생선 요리가 있으니 바로 구이이다. 횟집에서 곁들이 음식으로 나오는 꽁치구이는 물론, 고등어 자반구이, 간재미구이 등 비린내가 남에도 불구하고 구이는 무척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이다. 특히 고등어는 제철인 9월에서 12월 사이 주말이면 마트에서 염장된 고등어를 사다가 에어프라이에서 구이를 해먹곤 할 정도로 좋아한다. 


대학입시를 위해 재수하던 시절, 지방에서 단신으로 상경하여 신분보급소에서 배달 일을 하며 먹고 자면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던 예비역 형이 있었다. 키도 작고 말 수도 별로 없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던 성격이어서 군대를 어찌 갔다 왔을까. 의아심을 불러일으키곤 하였는데 그 형의 점심은 늘 도시락의 밥과 1회용 김뿐이었다. 공부를 하면서 몇몇 친구 들을 비롯하여 안 되어 보이기는 했지만 그 형의 자존심도 있어서 반찬을 나누어 먹자고 하기가 어려웠는데 어느 날 같은 수업을 들으며 그 형과 친해져서 점심시간이 되면 반찬을 나누어 먹기 시작했다.

하루는 매일 반찬을 얻어먹기가 미안했던지 그 형이 우리를 자신이 일하는 신문보급소로 저녁 식사 초대를 했다. 그때 준비했던 음식이 고등어 자반구이였는데 생선이라고는 기껏 꽁치 통조림이나 동태 탕 밖에 모르던 내가 고등어 자반구이를 좋아하게 된 역사적인 날이었다. 연탄 불 위에서 석쇠 위에 고등어를 굽는 머리 위로 노란 백열등이 깜깜한 밤을 밝히고 연탄난로 위에서 굵은 소금과 고등어의 기름이 서로 어우러져 튀면서 내뿜는 타닥타닥 소리와 노랗게 익어가며 떨어지는 기름, 고소한 냄새와 연기가 신문 보급소 사무실에 가득해질 때 반찬은 김치 하나였지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방금 손수 지은 하얀 쌀밥과 함께 먹는 고등어의 하얀 속살은 지금까지도 그날처럼 맛난 고등어구이를 먹어본 적이 없다고 기억할 정도로 별미였고, 매일 새벽같이 신문을 돌리면서 번 그 형의 소중한 돈으로 사서 해준 정성 가득한 최고의 밥상 이었다

“미안하다. 고기 사줘야 한는데."
"이 정도면 충분해요 형''

형의 초대 인사를 뒤로 모두가 배가 고팠던지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하여 고등어는 금방 뼈만 남고 말았고 먹는 모습을 바라보는 형의 입가에 웃음이 가득 배었다.
갓 구운 자반고등어의 기름이 번들거리는 입술에서 나온 들릴 듯 말 듯 한 우물거리는 그 형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고등어구이가 먹고 싶어진다. 쌀밥에 고등어구이 한 점 척 얹어서 입에 한 가득 넣고 먹는 다른 찬이 없어도 꿀떡 꿀떡 넘어가는 최고의 맛, 하얀 살이 노릿 노릿함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하늘로 오르는 불꽃과 매캐한 연탄의 조화로 만들어 낸 그때의 맛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는데 대학 진학 후에도 한동안 연락하면서 지내다 어찌어찌하여 연락이 끊긴 지 삼십 년이 넘은 지금, 그 형은 잘 지내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는 밤, 고등어구이는 여럿이 정답게 둘러 앉아 시끌벅적 떠들며 먹어야 제 맛이라는 생각에 그때로 돌아가 고등어가 헤엄치는 밥상을 통째로 굽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지금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외관으로는 문명의 엄청난 혜택 안에서 상상할 수없는 편안함과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는데 그러면 내 가슴은 그만큼 행복할까. 언젠가부터 물질적으로 편안한 삶, 남들보다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이 목표가 되어버렸다. 계속하여 더 풍요롭고 더 편리하고 더 안락한 삶을 찾아 해매다 앞만 보고 달려온 치열한 경쟁 속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를 생각지도 못할 만큼 바쁘고 바쁜 세상에 어느새 중독이 되어 있었다. 어떤 삶을 바라보는지, 무엇을 위해 달려가는지 왜 이리도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지,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기차처럼 앞만 보고 간다고 모든 것이 행복할까라는 의문은 늘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세상이 손을 잡아 끌고 빨리 뛰어오라고 재촉해도 번잡스러움과 조급함을 내려놓고 조금은 느리게 사는 법을 배워야겠다. 그때 고등어를 구워준 그 형에게서 받았던 밥상의 따뜻한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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