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완식 연재 詩소설 - 달맞이꽃(6)

수필, 소설

정완식 연재 詩소설 - 달맞이꽃(6)

방아 1 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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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달맞이길



쪽빛 바다를 시샘하던 햇살에

못 이기는 척 날아올랐을까


창해를 가르던 은어의

마찰 불꽃에 번득이는 파편일까


무심한 달빛이 다가오면

수줍게 고개 떨구고


약속도 없이 서산 넘는 달빛 뒤에서

남몰래 손들어 배웅하는,


외로움에 멍들고 상처받은

유리 가슴을 가진 꽃은


그리움이 깊어

푸르고 푸른 빛으로 핀다


- 달맞이꽃(1) -



세탁기의 전원 버튼을 막 누르려는데 핸드폰에서 흐르던 음악이 멈추고 전화벨이 울렸다.


손동작을 멈추고 식탁 위에 있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엄마였다.


"이노무 가시나야! 니는 혼자 살면시로 머가 바쁘다꼬, 니 엄마 아부지한테 전화도 안하노?

만날 내가 전화해야 카나? 나쁜 노무 가시나!


지 엄마 아부지 속타는 줄 알면 쉬는 날에는 전화라도 한 통 해줘야지, 내가 전화 할 때까지 머하고 있었노?"

 

수연의 엄마가 잘하지도 못하는 경상도 사투리를 섞어 쓰며 이놈 저놈, 나쁜 놈하고 부르는 것은 수연이나 수연 아버지한테 투정을 부릴 때 하는 버릇이라는 것을 수연은 잘 알고 있었다.


수연이 태어나자 그녀의 엄마는 엄마 몰래 서운해하던 아빠에게 보란 듯이, 수연을 남자 못지않게 키우겠다며 운동도 시키고, 공부도 시키는 데까지는 다 시키겠다고 하며 아들이듯 딸이듯 그렇게 키웠다.


그래서인지 다 큰 딸에게 투정을 부리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으면 이노무 가시나나 저노무 가시나가 버릇처럼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수연 엄마는 전라북도 전주 인근에 살고 있었는데 여름 휴가차 부산 해운대에 친구와 놀러 왔다가 경상도 토박이인 아버지를 만나 결혼까지 했다.


수연의 친구들은 "경상도 아버지와 전라도 어머니가 만나 결혼을 해 너를 낳았으니 너는 우리나라 동서 화합의 상징이다."라며 나중에 정치를 한번 해보라고 농담을 하곤 했었다.


", 또 우리 오여사님이 심통이 나셨을까?

안 그래도 지금 막 청소 끝냈는데, 세탁기 돌려놓고 엄마한테 전화하려고 그랬지..."


"그래, 우예 사노?

밥이나 잘 묵고 다니나?

요사는 어디 아픈데는 없나?

혼자 무섭아서 밤에 우예 자노?

~는 여~보다 사람도 많고 놀러 오는 사람도 많은데, 아직도 사귀는 남자는 없나?"


수연 엄마는 잔소리를 섞어, 그동안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궁금해도 곁에 없어서 물어보지 못했던 것들을 한꺼번에 물었다.


"걱정 마셔. 엄마도 알잖아. 내가 태권도 유단자라는 거.

내가 한 싸움해서 무서운 게 없어요.

밥도 잘 먹고 다니니 걱정은 붙들어 매시고 엄마는 아빠나 잘 챙겨드리셔.

요즘 아빠가 다리 힘이 많이 빠지셔서 자주 넘어지신다면서...

에효, 그러시면 지팡이라도 짚고 다니시든지 하시지..."


아버지 말에는 유독 약한 엄마를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못하게 막는 방법은 아빠를 상기시켜 주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 수연이 얼른 화제를 아빠 쪽으로 돌렸다.


"알았다. 이 가시나야?

내가 지팽이 짚고 다니라꼬 그리 일라도, 그라먼 딴 친구들이 늙은이라 놀린다꼬 안한다 안카나.

근데 이 양반이 밥때가 다 됐는데 어디 가뿟는지, 한참이나 얼굴 코빼기도 안뵌다.

한 번 찾으러 가봐야 되것따.

니는 우짜든 밥 잘 챙기묵꼬 항상 차 조심하거라.

글고 나나 니 아부지한테 전화도 자주 하고, 알았제?"


". 알았어. 엄마!

내 걱정은 안 해도 된다니까 그러네.

빨리 가서 아빠나 찾아보셔. 전화 끊어요."


수연은 서둘러 전화를 끊었지만, 속으로는 엄마 아빠를 생각하고 있다.


수연의 부모와 수연은 울산의 도심 외곽이라 할 수 있는 북쪽의 경상남도 송정군이라는 곳의 한적한 마을에서 살았다.


동대산과 동화산, 무룡산 등 그리 높지 않은 산들의 줄기가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송정저수지가 있고, 태화강으로 합류하는 동천강으로 이어지는 송정천이 이 송정저수지에서 흘러 내려와 어릴 적 수연과 친구들의 놀이터가 되어준 곳이었다.


수연의 부모는 그런 한적한 농촌 마을에서 원래 가지고 있던 땅과 주변의 땅까지 임대해서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면서, 외동딸인 수연을 금이야 옥이야 키웠고, 수연이 원하는 것이나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다 가르치고 배우게 했다.


그러나 울산이 직할시로 승격되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송정도 울산으로 편입되자 수연의 부모가 살던 땅 주변도 개발되어 택지로 변하게 되면서, 더 이상 임대해서 지을 땅도 없어지고 수입이 줄어들자 덩달아 수연의 대학원 진학도 제동이 걸렸다.


수연이 대학에서 하던 공부란 것이 역사학이었는데, 이는 학부과정에서는 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지나가서,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려면 대학원으로 진학해야 했고,

대학 학부과정을 마치고 고민을 하던 수연은 결국 부모와는 멀리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수연이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는 학과와 교수가 있던, 부산의 한 대학원으로 진학해 일과 학업을 계속하는 것으로 결정했었다.


수연의 부모는 처음에는 외동딸을 혼자 타지로 보내는 것이 마음에 걸려 망설였지만, 이제껏 한 번도 제 부모를 실망하게 하는 일을 하지 않았던 수연의 결심을 믿고 그녀를 위해 있는 돈을 다 끌어모아 부산에 방을 하나 얻어주었는데,


이때 수연의 부모는 자신들이 처음 만났던 곳이기도 하고, 수연이 바다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이곳 달맞이길의 언덕에 있는 조그만 원룸을 얻어주었었다.


비록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 아닌, 주변의 높은 건물에 둘러싸인 빌라의 2층이었지만 신축건물이라 깨끗하고 간단한 편의 시설이 대부분 갖추어져 있어서 수연이 혼자 지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수연도 그녀가 다녀야 할 학교까지는 거리가 좀 있긴 하였지만, 그녀를 위해 그녀의 부모가 어렵게 장만해준 원룸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다가 가까워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벼운 차림으로 언덕을 내려가 해운대 해변을 산책할 수도 있고, 언덕 위에서도 송림 사이로 보이는 바다와 저녁에 바라볼 수 있는 달이 가까이 있어 너무 좋았다.


사실 수연은 수연의 부모가 알고 있는 것처럼 바다도 좋아했지만 맑고 은은한 달을 더 좋아했다.


부모님을 따라 뒷산에 올라 끝없이 펼쳐진 동해, 바다를 바라보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머릿속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었다.


산길을 한참 걸어 바닷가로 나가면 어린 수연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차박차박 소리를 내주는 거칠고 굵은 모래알도 좋았고, 한없이 밀려온 파도에 쓸려 닳고 닳은 몽돌을 주워 바다 위로 던지면 퐁! 소리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검붉은 몽돌들도 좋았다.


해운대의 바다는 수연이 어릴 적 부모님과 보아왔던 바다와는 또 달랐다.


하얀 백사장이 넓고 길게 펼쳐져 있고 높게 솟은 빌딩과 조형물들이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밤이면 형형색색의 조명들까지 바다를 아름답게 치장해주고 꾸며주어서 밤이고 낮이고, 여름이고 겨울이고 계절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찾아왔다.


어릴 적 부모님과 보았던 한적한 바닷가의 쓸쓸한 바다가 아닌 화려하고 활기가 넘치는 도회적인 바다였다.


수연은 이런 도시의 인위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바다에 처음에는 낯설어하기도 하고 생기가 넘쳐나는 젊음 같은 것이 있어 좋아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눈에 익숙해진 해운대 바다는 점차 수연의 흥미를 감소시키고 있었고, 그때 새롭게 수연의 관심을 끌었던 것이 어느 날 소나무숲 사이로 둥실 떠올라 수연의 눈을 가득 채워주었던 보름달이었다.


평소에 보던 보름달보다도 훨씬 커서 처음엔 저게 달이 맞나 싶어서 다시 자세히 올려 본 달은 그냥 육안으로 보기에도 너무 크고 선명해서, 그녀의 바로 눈앞에 떠 있어, 손을 뻗으면 금방 손에 닿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올 정도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길게는 몇십 년 만에, 짧게는 수년 만에 오는 슈퍼문이었다.


어릴 적 아빠가 앞마당에 모닥불을 피우고 그 위에 지푸라기를 태우면서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던, 그 옆에서 고사리 같은 두 손을 꼬옥 움켜쥐고 자신이 공부를 잘하게 해달라고 아빠를 따라 소원을 빌던 정월의 대보름달보다도 두 배는 커 보였다.


그때 본 달이 너무 크고 맑아서, 은은하면서도 푸른 빛을 띠고 있는 슈퍼문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그 뒤로도 수연은 한동안 밤이 되면 자주 언덕으로 나가 산책을 하며 달을 바라보곤 했었다.


고요한 달이 소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보일 때마다 수연은 달과 숨바꼭질을 하듯 고개를 돌려 달을 쳐다보고는 미소를 지어주기도 했다.


구름에 가려 달이 보이지 않는 날이면 해변까지 내려가 한참을 서성이며 달을 기다리다가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날이면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이 모여 작은 시냇물처럼 유리창을 따라 흘러내리는 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모진 태풍과 먹구름에 시달리고 있을 달을 걱정하기도 했다.


그렇게 수연은 자신도 모르게 달맞이꽃을 닮아가고 있었다.


그 주말의 휴일에도 수연은 작은 원룸을 다 정리하고 나서, 서산으로 넘어가는 붉은 노을과 달을 보기 위해 그녀가 자주 다니는 카페의 루프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1 Comments
l인디고l 2021.09.17 10:27  
이번 추석 보름달을 유심히 봐야 겠다~ㅋ
오늘도 즐독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