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완식 연재 詩소설 - 달맞이꽃(8)

수필, 소설

정완식 연재 詩소설 - 달맞이꽃(8)

방아 1 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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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첫 이별

 

 

비가 온다

봄비가 온다

꽃비 내리고 그 위에도


네가 떠나고

사랑은 멀어지고

그 빈 자리 빗물로 채운다


안녕을 그려내는 손짓에

찬 비, 줄기 되어 흐르면

넌 떠나 보이지 않고


봄비 오던 날의

그 창백한 손등에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이 새겨졌다


- 봄비 오던 날 -


 

시야에 거슬릴 것이라고는 키 낮은 사방 유리 벽 외엔 아무것도 없는 루프탑에서 바다 위로 떠 오른  반달이 거침없이 파도타기를 하는 경관을 보고 있으려니 운치도 있고 분위기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런데 그것보다 중요한 건 화수의 가슴을 하염없이 콩닥거리게 만드는 수연이 그의 옆에 서 있다는 것이었으니 마치 저 바다 위의 반달이 화수와 수연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고 반달이 반달이 아닌, 꽉 찬 보름달처럼 부풀게 보이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직 이른 초봄의 쌀쌀한 바닷바람은 비록 바람막이 점퍼를 입었다고는 하나 시간이 갈수록 화수의 얼굴을 세차게 때리고 있어  추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바닷바람에 익숙해 있는 수연이 비록 밤의 한기를 대비해 비교적 두터운 외투를 입고 나오긴 했지만, 그녀에게도 역시 추위는 피해가지 않았다.

 

"수연씨!

밤바람이 제법 차가운데 아래층의 실내 카페나 아니면 다른 장소로 옮기는 것은 어떨까요?

 

반달은 이제 해운대 바다 건너 구름 한 점 없는 오륙도 상공에 둥실 솟아있었고 수연은 여전히 반달을 응시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녀의 긴 속눈썹이 가끔씩 파르르 떨리고 있음을 옆에서 지켜본 화수가 놓치지 않고 수연을 향해 제안했다.

 

화수의 제안에 수연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화수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루프탑으로 연결된 계단을 내려와 카페 안으로 들어왔지만 이미 거기에는 두 사람보다 먼저 추위를 피해 내려온 사람들로 가득해서 앉을 자리가 없었고, 결국 둘은 카페를 나와 수연이 앞장서고 화수는 뒤따르며 근처의 한 실내 포장마차로 갔다.

 

화수가 수연을 따라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서니 포장마차 주인 내외 두 사람이 수연을 보고 아는 체를 하는 것을 보니 수연은 이곳의 단골인 듯했다.

 

"드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화수씨가 원하는 것으로 주문하세요.

여기 이모님, 음식 손맛이 좋아서 뭐든 다 맛있어요."

 

"아닙니다. 수연씨가 좋아하는 것으로 주문하세요. 저는 실은 그 카페에 가기 직전에 좀 이른 저녁 식사를 해서 배가 고프지 않으니 술이나 한잔 마시면 될 것 같습니다."

 

화수의 대답에 수연이 알았다는 듯이 익숙하게 주문을 하고 소주도 한 병 시켰다.

 

"여기는 제가 아까 그 카페에 가는 날이면 꼭 들러서 저녁 식사도 하고 가끔 반주로 맥주도 한 잔씩 하는 단골집이어요.

집에서 가까워 늘 저 혼자서 오는 곳인데, 화수씨 덕에 오늘 처음으로 다른 커플처럼 마주 쳐다볼 수 있는 사람이 생겼네요. 호호..."

 

수연이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화수에게는 좀 전에 카페의 루프탑에서 보았던 웃음과는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저랑 같이 와서 수연씨도 좋다는 말씀으로 알겠습니다. 수연씨 덕분에 저도 좋은 맛집을 하나 알게 됐네요.

감사합니다. 하하"

 

둘이 서로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과 술이 플라스틱 간이테이블 위에 차려지고 두 사람 앞에 잔이 놓이자 화수가 소주잔에 술을 따르며 본인 얘기를 꺼냈다.

 

"아까 잠깐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경기도 수원에서 혼자 원룸에서 살며 화성에 있는 한 자동차 탁송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 전에 다른 중견기업에서 약 2년 남짓, 사무 일을 하다가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너무 길어질 지루한 인생 항로가 보여 과감히 사표를 내었고, 이 일을 시작한 지는 1년 정도 되었어요.

몸은 고되지만 일이 일찍 시작해 비교적 이른 오후에 끝나서 제가 읽고 싶은 책을 읽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서 좋고, 나가는 돈도 많지만 그만큼 수입도 적지 않아서 괜찮아요.

나중에 어느 정도 사업자금이 모이고 좀 더 계획이 구체화 되면 조그맣게라도 제 사업을 한번 해 보고 싶어요."

 

화수는 자신도 모르게 그동안 어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본인의 생각을 수연에게 얘기하고 있었다.

 

"~, 아직 젊으신 것 같은데 인생계획을 확실히 정하고 사시는 것이 저한테는 부럽게 들리네요.

저도 그렇고, 요즘 많은 젊은 사람들은 시대를 잘못 태어나서 진학이다, 취업이다, 결혼이나 육아, 집 장만, 이런 것들 때문에 사는 것도 힘들고, 앞으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막막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들 이야기하는데 ..."

 

수연은 처음 화수가 자동차 탁송 일을 하고 있다는 말에 그가 그저 좀 거칠고, 힘든 일을 하고 있구나하는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화수의 구체적인 계획에 화수가 자기 또래와는 달리 제법 일찍 철이 들고 생각이 바른 청년이라는 생각을 했다.

 

"모쪼록 화수씨의 인생계획이 뜻대로 이루어지길..."

 

수연이 잔을 들어 화수의 잔에 부딪히며 건배를 하는 시늉을 했다.

 

"고맙습니다.

수연씨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화수가 조심스럽게 수연의 대답을 유도하며 물었다.

 

"저는 화수씨와는 반대로 대학원 공부를 하다가 지금은 중단하고 다람쥐 쳇바퀴를 선택했어요.

부모님이 울산 외곽에서 농사를 지으시며 저를 대학원까지 공부시켰는데, 이제는 연로하신 부모님께 제가 하고 싶은 공부 더하겠다고 더 이상 손을 벌리기가 죄송해서, 박사과정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할까 고민하던 중에 지도교수님께서 추천해 주셔서 지금은 다니던 대학의 행정직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학비가 마련되면 다시 박사과정을 시작하려고요."

 

"그러시군요.

그럼 저도 박사 수연씨를 응원합니다."

 

이번에는 화수가 잔을 들어 수연의 잔에 부딪히며 건배를 했다.

 

그렇게 몇 잔이 오고 가며 해운대 달맞이길, 어느 포장마차에서의 밤이 깊어가고 어느덧 둘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서로의 눈이 마주치며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 다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1 Comments
l인디고l 2021.10.06 14:19  
두 분의 사랑을 응원합니다~즐독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