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의 반전 콩트(Conte) 1

콩트

민병식의 반전 콩트(Conte) 1

제임스 0 1309

[콩트] 착각

민병식

고등학교 때 하두 농땡이를 깐지라 가고 싶은 대학에 진학할 성적은 안되고 결국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재수를 하게 되었다.
올해의 무더위처럼 무척이나 더웠던 그 해 여름 어느 날 뜬금 없이 어머니께서 내 속옷을 사오셨다. 어려서 부터 귀에 익숙한 빤쓰, 그런데 참 독특한 것이 그때 흔했던 색깔인 흰색도 아니고 검정색도 아니고 노랑 빨강 파랑 딱 세가지 색깔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구했는지 어디서 본적도 없는 무늬도 없는 순수하게 빨강, 노랑, 파랑색만 있는 이것을 어찌 입어야 할지 난감했는데 파랑은 그렇다 쳐도 노랑, 빨강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앞뒤를 아무리 살펴봐도 남성용 속옷이 맞았다.

"엄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빨강, 노랑은 뭐야?"

흰색 면 팬티를 입고 나면 잘 빨리지 않아 삶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한 어머니의 나름 해결책 이었던 것인데 그래도 예쁘게 입히고 싶으셨던지 삼원색을 사오셨던 것이다.

"도저히 빨간색은 안되겠어. 어디가서 벗을 일이야 없겠지만 어떻게 남자가 빨간 팬티를 입고 다녀!라고 말하고는 그나마 입을만한 파란색만 챙기려하는데 "구하느라고 힘들었으니 노랑색도 가져가" 하시면서 속옷 서랍에 노랑은 물론이고 빨강까지 은근슬쩍 다 집어 넣으셨다.

어느 날 아침에 학원에 가려고 준비를 하는데 속옷을 모아서 빨다보니 딱 마침 흰색, 파랑색은 없고 노랑과 빨강만 남아있다. 어쩔수 없이 그나마 낫다고 생각되는 노랑색 속옷을 입고 전철역으로 향했다. 그때 나는 서울 이문동에 살았고 용산역 근처 있는 학원을 다녔기에 용산을 경유하는 인천행 전철 1호선이나 용산이 종점인 경치 좋은 한강을 배경으로 지상으로만 다니는 두칸 짜리 기차를 타고 다녔는데 둘 중하나 먼저 오는 것을 타곤 했다. 그날은 두칸짜리 기차가 먼저 도착하여 탔는데 빈 자리는 하나도 없고 서있는 사람도 나 하나였다.

벽에 기대어 서서 가는데 누가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내 또래 여학생과 딱 눈이 마주쳤다. 내가 쳐다보면 고개를 슬쩍 돌리고 내가 고개를 돌리면 흘끔흘끔 계속 눈길을 주고,

''잘 생긴 건 알아가지고, 먼저 말을 걸던가, 내가 가서 슬쩍 말을 걸어볼까?" 여학생의 눈빛이 너무나 애절하게 나를 바라는 듯 보였으나 아니면 어쩌지라는 민망함에 대한 두려움으로 말을 걸지는 못했는데, 1%의 실패를 이겨낼 용기가 생기지 않은 거였다.

어느덧 열차는 한강을 배경으로 한남, 이촌을 지나 종착역인 용산을 향하였고 그녀는 결국 아무말도 걸지 않은 채 종점에 빠른 걸음으로 총총 떠나고 말았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화장실에 들렀는데 "아뿔싸! 청바지 지퍼가 배고픈 고래 입처럼 쫙 벌어져있고 나의 노랑은 보무도 당당히 적나라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말을 해주던지 아님 아예 모른척하던지 왜 자꾸 쳐다봐서 착각하게 만들어!"

그후 어떤 여자와도 눈을 마주치면 지퍼부터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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