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의 문학칼럼 11 - 데이비드 샐린저

기타

민병식의 문학칼럼 11 - 데이비드 샐린저

제임스 0 191

[문학칼럼]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만난 순수와 현실의 외나무 다리
민병식

이 작품은 고전 중에서도 근 세기에 쓰인 1951년 작품이다. 저자인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1919-2010)는 은둔형 외톨이로 유명한 사람인데 평소 인터뷰도 거부했다고 한다. 작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평이 많았다. 이 작품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비교되는 작품이기도 하고 범죄를 저지른 유명한 인물에게도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존 레넌’암살한 마크 채프먼과 케네디 대통령 암살범인 리 하비 오즈먼드도 이 소설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미국의 상류층 자제이다. 팬시라는 기숙학교에 다니는데 엘리트들만 다닐 수 있으며 돈이 아주 많이 드는 학교이다. 주인공의 집이 뉴욕에 있고 아버지가 변호사라는 것을 미루어 봐도 그의 배경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런데 주인공인 홀든은 그 학교에서 낙제를 하는 바람에 퇴학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퇴학을 당해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어차피 학교의 모든 것이 다 싫었기 때문이다. 기숙학교였기 때문에 학기가 끝나고 짐 싸서 나가기 전까지 그곳에 머무를 계획이었지만 룸메이트와 싸우다가 두들겨 맞고 그날 바로 짐을 싸서 나와 버린다. 수요일에 홀든에 대한 편지가 부모님께로 전달되는데, 홀든은 그 전까지 뉴욕의 호텔에서 머물러 있기로 작정한다.

홀든은 기차와 택시를 타고 뉴욕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호텔에 머문다. 외로워서 클럽에 가서 여자들과 춤을 추기도 하고, 술집에 가서 안면이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홀든의 눈에는 모두가 가식적이다. 또 홀든은 엘리베이터에서 포주에게 성매매 제안을 받기도 한다. 결국 홀든은 창녀를 호텔 방으로 불렀는데, 창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옷을 벗자 홀든은 성관계를 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냥 대화만 하자고 제안한 하지만 창녀는 빨리 일을 끝내고 가고 싶어 하고, 결국 처음 포주와 이야기 했던 대로 5달러를 주고 보내려고 하지만 창녀는 10달러를 요구하고, 홀든은 5달러 이 5달러를 주고 돌려보낸다. 결국 창녀는 포주를 불러와 포주는 홀든을 구타하고 5달러를 지갑에서 더 가져갔다.

홀든은 바에 가서 여러 사람들을 보고 이야기도 나눴지만 그들의 가식에 염증을 느낀다. 그리고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동생인 피비를 보러가기로 결심한다. 홀든은 부모님이 없는 집에 들어오지 않은 틈에 피비 방에 들어가 피비와 이야기를 나눈다. 자신의 피비는 자고 있다가 홀든이 깨워서 일어났으며 그는 피비에게 자신이 되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바로 책의 제목이기도 한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떠난 다난 홀 필드를 울며 불며 붙잡던 피비를 달래 근처 놀이공원에서 회전목마를 태워주는데 목마를 타며 즐거워하는 피비를 보고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낀다.

그리고 홀든은 안톨리니라는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선생님 집으로 찾아간다. 그는 홀든이 좋아하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 선생님은 홀든을 반갑게 맞아주었으며 현재 홀든의 상황을 듣고 나름대로 좋은 충고도 많이 해준다. 그런데 홀든이 자고 있을 때 그 선생님이 홀든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홀든은 깜짝 놀라 일어나서 바로 그 선생님 집 밖으로 뛰쳐나온다. 홀든은 자신이 변태 같은 짓을 당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홀든은 결국 지하철 대합실에서 잠이 든다. 원래 집에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이제 서부로 완전 떠나버릴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피비에게 돈을 다시 돌려주고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서 피비가 다니던 학교이자 자기가 어렸을 때 다니던 학교를 찾아간다. 그러나 피비는 자기를 두고 떠나려는 홀든에게 화가나고 홀든은 피비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동물원을 데려간다. 거기서 홀든을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그리고 홀든은 이 모든 이야기를 정신과 의사에게 이야기하며 상담을 하고 있었다.

이 장면은 그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기를 포기하고 결국 서부로 떠나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곧 그가 아이들의 '순진성'이란 아무리 노력해도 영원히 지키거나 보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결국은 오염된 채 어른들의 경험의 세계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순진성의 상실에 대한 홀든의 강박관념은 소설 전반에 걸쳐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창녀를 불러놓고도 그대로 보낸다든지, '호밀밭'에 대한 노래를 부르며 길가를 위태롭게 걸어가는 어린아이를 보며 기분 좋아하는 것 역시 순진성의 수호자로서 홀든의 심리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주인공 홀든은 자연사 박물관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를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그대로 보존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자연의 역사는 유리로 된 창 안에 오염되지 않고 순수를 간직하며, 언제 찾아오더라도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순수의 보존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순수를 상실하고 타락하며, 결국 허위와 가식 속에 살게 된다. 홀든의 고뇌는 바로 그러한 필연적 사실의 슬픔을 인식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현실세계와 타협하지 않는 방법은, 또는 저항의 상징적 제스처는, 미치거나 아니면 미치는 척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홀든이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요양소에서 자신의 지난날을 회상하며 이야기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홀든은 이상적인 반항아이면서, 동시에 사회 부적응자이기도 하다.

세상을 살면서 언제나 순수하고 자 했던 홀든을 보면서 나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순수의 감정을 보존하고 살아가는지 돌아보게 된다. 비록 홀든은 순수성에 대한 지나친 집착 내지는 변하지 않는 순수의 삶을 극도로 지향하면서 현실과의 타협에 실패하고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살았다하더라고 그의 순수를 위한 삶의 지향은 높이 산다. 현실과 타협하며 어른이 되어 어른 들의 세상에서 나는 행복한지, 순수와 오염이 만나는 외 나무 다리를 어떻게 건너갈지 망설이며 고민하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