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의 행복한 서평 11

기타

민병식의 행복한 서평 11

제임스 0 2745

[서평] 김유정의 동백꽃
민병식

동백꽃은 1936년 조광에 발표된 김유정(1908-1937)의 대표적 단편소설로 1930강원도 산골마을을 배경으로 이성에 처음 눈을 뜨는 젊은 남녀의 순박한 사랑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김유정은 강원도 춘천 출생이며 1935년 조선일보와 중외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하였고 구인회 동인으로 이상과 각별한 교우로 지냈다고 한다. 폐결핵에 걸여 29세의 나이로 요절했으며 불과 2년 동안 30여편이 작품을 남겼다. 


김유정은 정치적,경제적으로 혼란기였던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고 가난과 병마의 고통으로 삶이 평탄하지 못했다. 이 작품은 1930년대 한국 농민의 궁핍한 삶을 해학적, 풍자적으로 그러면서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내었다고 볼 수 있는데, 봄이면 노란 꽃이 피는 생강나무를 강원도에서는 동백이라고 했다고 하니, 소설에 나오는 동백꽃의 묘사는 노란색이며 알싸한 향이 난다고 하는 것으로보아 동백꽃은 생강나무꽃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소설은 주인공의 수탉이 점순이네 수탉에게 일방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점순이네 수탉을 지게 막대기로 후려칠까 생각하지만 생각을 고쳐먹는다. 바로 점순이의 아버지가 마름이기 때문이다. 소작농에게 마름은 신과 같은 존재이다. 잘못보이면 소작을 떼인다. 곧 먹고 사는 문제가 걸려있는 것이다. 점순은 틈만 나면 닭 싸움을 벌인다. 주인공을 골려먹기 위해서인데 점순이는 주인공은 좋아하는 듯하다. 그러면 주인공은 어떤가? 점순이가 싫지는 않다. 단 , 소작농의 아들과 마름의 딸로 소문이라도 나면 자신에게 손해가 날 것임을 알기때문이다.

"너희 집에 이거 없지?"라고 하며 점순은 주인공에게 감자를 준다. 호의의 표시이며 애정의 표시다. 그러나 주인공은 받을 수 없다. 마을에 처음 들어와 집이 없어서 곤란할 때 집터를 빌리고 집을 짓도록 마련해 준것도 점순이네였고, 양식이 달리면 꾸어다 먹는 곳도 점순이네 집이다. 결국 주인공이 점순이와 가까이 지내면 동네에 소문도 나고, 점순과 일을 저지르면 점순네가 노하여 그나마 땅도 떨어지고 집도 내쫓길 판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점순이가 자꾸 괴롭히니 얼마나 답답할까. 점순이에게 진지하게 말할 수도 없고, 때릴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순이는 주인공이 기르는 닭을 괴롭힌다. 없는 집에서 얼마나 소중한 닭인가. 닭을 괴롭히면 주인공이 힘들다는 것을 점순이도 안다. 그렇다고 자기 마음을 고백할 수 없으니 주인공을 향한 마음을 반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닭에게 고추장도 먹여도 계속 점순테 수탉에게 당하기만 할 뿐이다. 점순이는 아랑곳 하지 않고 또 쌈을 붙인다. 주인공의 닭은 거의 죽을 지경, 격부한 주인공이 점순네 수탁을 죽여버렸다. 마름네 닭을 죽인 것이다. 주인공에게 생사가 달린 위기가 닥쳐온 것이다. 땅도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면 어디로 간단 말인가. 주인공은 울음이 터지고 만다. 그 순간 점순은 다시 안 그럴테냐는 다짐을 빌미로 닭 죽은 것에 대한 비밀을 지킬 것을 암시하면서 둘은 알싸한 그리고 그 냄새에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을 아찔하게 하는 동백꽃 속으로 파묻힌다.

작품은 농촌을 배경으로 김유정 특유의 향토적이고 토속적이며 서정적이다. 그러나 작품의 이면에는 부농과 빈농의 계층적 갈등과 일제 강점기 시대의 식민지 현실에서 민중이 감당해야 했던 비참한 현실이 숨어있다. 그 비참한 삶의 이면을 작가는 해학적이면서도 서정적인 감수성의 세계로 이끌어 냈던 것이다.

그렇다면 둘의 사랑은 무르익었을까? 어찌 보면 종속의 관계에 있는 둘 사이에 앞으로의 길은 더 험난할지 모른다. 주인공이 소작농의 아들이고 점순은 마름의 딸이라는 신분 관계는 달라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주인공의 생존권을 점순이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불평등 관계인 것이다. 결국 주인공은 점순이가 원하면 무엇이라도 들어주어야할 처지에 있기에 부담스러울때도 있을 것인데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점순이 어머니가 점순을 부르며 찾는, 그때 주인공은 산 위로 점순은 산 밑으로 도망간다. 즉, 이 부분에서 두 사람이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어 사랑을 만들어 가는데 많은 제약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본다. 이 둘의 사랑은 결국 둘 사이에 놓여진 장애를 어찌 뛰어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고되고 힘든 소작농인 주인공의 모습에서 지금의 시대에 고군분투하는 젊은이 들의 모습을 투영한다. 사랑은 꿈도 못꾸고 생존을 위해 밤낮없이 뛰어야 하는 처지에 무슨 결혼을 꿈꿀까.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는 원인이다. 겨우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싶어도 살 집이라도 얻어야지, 생활비 마련에, 먹고나 살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니 결혼을 한다해도 아이를 나을 염두를 못내는 것이다. 유희의 인간으로 누려야할 권리는 꿈도 못꾸고 점점 삶이 구질구질해져 가는 모습을 상상하니 무모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숭고한 사랑은 배부른자들의 사랑 타령이 되고 3포, 5포를 넘어 7포세대라는 말이 등장한다. 혹시라도 남녀 공히 작품 속의 점순이같은 상류계층의 상대를 만나 신분상승을 한다고 해도 그 미묘한 차이를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모든 것이 어렵다.

그러나 우린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생태계라해도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잡아야 하는 동물의 왕국으로 세상이 흘러가도록 내버려둬서는 안된다. 결국 서로를 헐뜯고 싸우는 그런 각박한 마음으로는 이 사회가 가진 모순을 해결할 수 없으니 계층의 화합과 사랑만이 이 사회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지도층부터 청렴과 청빈함이 필요할 것이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위한 애민과 선비정신이 필요할 것이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