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의 문학칼럼 17 - 황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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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식의 문학칼럼 17 - 황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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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보는 우리 시대에 필요한 사랑의 조건
민병식

소나기는 황순원(1915-2000)선생이 1953년 ‘신문학’에 발표한 단편 소설로 원제는 ‘소녀’이다. 이성에 눈을 떠가는 사춘기 소년과 소녀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 몰락해가는 양반 윤초시 댁 손녀 딸과 시골 소년의 아름다운 첫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소년’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 비켜 달라고 말도 못하고 물 장난을 하고 있는 ‘소녀’가 비켜주기를 한없이 기다린다.다행히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징검다리를 건널 수 있었지만, 다음 날은 지나가는 사람이 없다. 여느 때처럼 개울가에서 물을 움켜 내며 놀고 있는 소녀, 소년에게 말 좀 걸어 달라는 신호였지만 순진한 ‘소년’이 그것을 알 리가 없다. 그러다 갑자기 “이 바보” 하며 조약 돌이 하나 날아온다. 그리고 ‘소녀’는 사라져 버린다 ‘소년’은 ‘소녀’의 마음을 알아챘을까. 순수한 사랑의 시작이다. 


다음 날은 ‘소녀’가 보이지 않는다. ‘소년’은 ‘소녀’가 앉았던 징검다리 한가운데서 ‘소녀’를 따라 해보다가 개울에 비친 까만 자신의 얼굴이 싫어 몇 번이고 물을 움켜 낸다. ‘소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전혀 인식하지도 못했던 자신의 얼굴이 얼굴 피부가 하얀 ‘소녀’를 좋아하게 되면서 부끄러워지는 열등감,바로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괜히 자신이 한없이 작아 보이고 못나 보이는 증상이다.

다음 날 징검다리를 건너려고 하는데, “얘, 이게 무슨 조개지?”
하고 ‘소녀’가 말을 건다. 소년은 부끄러워 얼른 고개를 떨구며 “비단 조개”라고 답하면서 둘은 산 너머로 함께 놀러 가게 된다 소년은 오늘 텃논의 참새를 봐야 하는 날이지만 부모님께 혼날 각오를 하고 그냥 간다. 사랑의 무모함, 고난을 이겨내는 사랑의 힘이다. 원두막에 도착한 ‘소녀’가 “참외 하나 먹어봤으면......” 하자 ‘소년’은 무 밭으로 들어가 무 무를 뽑아오고 소녀가 맵고 지리다며 집어 던져버리자 사실 맛있었지만 맛없어서 못 먹겠다고 하며 소년은 더 멀리 팽개쳐 버린다. 나보다 상대방의 감정이 더 중요해지는 사랑의 맹목성이다. 소녀가 산에 널려있는 꽃들의 이름을 물으며, “나는 보랏빛이 좋아”라고 말하자 소년은 이리저리 다니며 꽃들을 꺾어다가 묶음을 만들어 주고 하늘에 있는 별이라도 따다 줄 듯한 사랑의 용감성이다.  


소녀는 서울 서 놀던 동무들이 생각난다며 비탈진 곳에 있는 칡 꽃을 따러 기어 내려가는데 미끄러져 무릎을 다치자 소년은 생채기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빨아준다.. 어디론가 가서 송진을 구해와 ‘소녀’의 무릎에 발라주고는 송아지가 있는 곳으로 가보자고 한다 ‘소년’은 멋져 보이려고 또 송아지 등에 올라타 보이지만 농부에게 걸려 혼이 날 뻔하고. 곧 비가 올 것 같다는 농부의 말이 끝나자마자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하고 둘은 일단 원두막으로 달려가 비를 피하려고 했지만, 지붕이 찢어져 비가 새자 소년은 수수 밭 쪽으로 달려가 부지런히 수수 단을 날라다 세운 뒤 함께 수수 단 속에서 비를 피하나 소년은 앞쪽에서 거의 그냥 비를 맞아야만 했다. 희생의 사랑이다. 그런 소년을 보고 소녀는 안으로 더 들어오라고 했고 그러다가 꽃 묶음이 오그라 든다. 그래도 소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소년이 더 중요했다. 소년이 가까이 오자 비에 젖은 소년의 몸 냄새가 확 났지만 소녀는 고개를 돌리기는커녕 오히려 따뜻한 몸 기운으로 떨리던 몸이 누그러지는 듯하다. 눈꺼풀에 뭐가 씌운 사랑의 환상성이다. 곧 소나기가 그치고 불어난 도랑 앞에서 ‘‘소녀’를 업고 ‘소년’은 도랑을 건너 집으로 돌아간다.

그날 이후 ‘소녀’는 한동안 보이지 않는다. ‘소년’은 그리운 마음에 조약 돌을 만지작거리기만 한다. 연인에 대한 그리움이다. 어느 날 ‘소녀’가 개울 둑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소년’이 다가가고 그동안 못 나왔다며 ‘소녀’가 대추 하나를 건네고 ‘소녀’는 싫지만, 곧 이사를 가게 될 것 같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소년’은 자기가 먹고 있는 대추 알의 단맛도 못 느낄 정도로 충격을 받는다. ‘소년’은 ‘소녀’가 이사 가기 전에 덕쇠 할아버지네 호두 맛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든 표현하려는 사랑의 마음, 그렇게 ‘소년’은 덕쇠 할아버지네 호두 밭에 가서 도둑질을 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려는 사랑의 위대함이다.

그러나 결국 호두도 주지 못하고 ‘소년’은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되는데. 소녀네 집이 내일 양평 읍으로 이사를 간다는 것이다. 그날 밤 잠자리에서 내일 소녀네를 찾아가 볼까 말까 하던 중 부모님이 하는 말을 듣게 되면서 이 소설은 끝이 난다

“어쩌믄 그렇게 자식 복이 없을까. 그런데 참 이번 기집애는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어.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어?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구......”

소나기가 한바탕 내리고 뚝 그치듯 너무도 짧게 끝나버린 사랑이야기,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을 보면, 소년, 소년의 사랑은 이 시대 사람 들이 바라는 가장 순수한 사랑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소설에서 비록 현실의 어려움을 모르는 소년, 소녀의 사랑이라 할지라도 사랑에 필요한 가장 근원적인 조건 없음을 나열하고 있다.

현대 사회 우리의 사랑은 어떠한가. 마치 소나기처럼 강렬하게 퍼 붓고는 날이 개이면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제 갈길을 가는 그런 사랑이 만연하지는 않은지, 언제든지 헤어짐을 준비하는 듯 수시로 관계의 대상이 바뀌는 가벼운 시대를 살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들이 꼭 배워야할 진정한 사랑의 마음을 소나기처럼 강렬하게 쏟아붓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 본연의 순수란 어떤 것이며, 그 순수에서 나오는 사랑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되새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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