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 문학칼럼 18 - 손톤 와일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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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식 문학칼럼 18 - 손톤 와일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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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손톤 와일더의 희곡 '기나긴 크리스마스 정찬'에서 배우는 현재의 소중함
민병식

손톤 와일더(1897-1975)는 소설가 겸 극작가다. 먼저 그의 작품활동을 살펴보면, 살아있는 동안 총 52권의 도서와 6개의 영화 각본을 썼다. 1927, 1938, 1942에 퓰리처상을 연달아 수상하였다. 1930년부터 1937년까지 미국 시카고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하와이 대학교에서 교직을 맡았다. 


‘기나긴 크리스마스 정찬’은 미국 중서부 어느 가정의 세대에 걸친 생활이 전개되는데, 어머니, 남편, 아내, 딸, 며느리, 아들, 손자 4대가 식탁에 앉아 나누는 얘기를 통하여 90년간의 세월의 흐름을 나타낸다. 함께 앉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죽어서 사망의 문으로 나가고 누군가가 태어나 탄생의 문으로 들어온다. 보통의 연극은 시간이 계속 흐르며, 여러 공간이 등장하지만 이 작품은 ‘크리스마스날의 저녁’ 이라는 한가지의 시간대와 저녁 만찬을 먹는 ‘식탁’ 이 한 공간만이 등장한다. 시간과 장소는 바뀌지 않고 매년 그 자리이고 인물만 바뀌는 90년의 세월을 담고 있다. 극이 진행되면서 주인공들은 머리가 하얘지며 늙고, 죽음에 이르고 새 인물이 등장하는 등 순환을 이룬다.

기본 무대 장치는 변하지 않고, 막도 사용하지 않으며 관객이 극장 안을 들어설 경우, 눈에 보이는 것은 크리스마스 만찬을 위한 테이블과 의자 뿐이다. 가족들은 가상의 칼과 포크를 사용해서 가상의 접시에서 음식을 먹는다.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기 위하여 배우들이 가발을 쓰거나 스카프를 두르는 등 먹어가는 나이를 표시하고 결국에는 사망의 눈으로 나간다. 특별한 사건은 없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태어나고 하는 어느 가족의 인생의 순환이 계속 이어진다.

등장인물을 살펴보겠다. 로드릭, 로드릭의 아내 루시아, 로드릭의 어머니 베이어드, 로드릭의 사촌형 부랜돈, 로드릭의 아들 찰스, 로드릭의 딸 제네뵈브, 촬스의 부인 어멍가드, 촬스의 아들 쌤, 촬스의 딸 루시아, 촬스의 아들 로드릭, 하녀 거트루드, 하녀 힐다, 하녀 메리 등이다.

장면은 로드릭과 아내 루시아, 로드릭의 어머니 베이어드, 로드릭의 사촌 부랜돈, 하녀 거트루트가 등장해 어느 해의 크리스 마스 정찬을 즐기며 가족, 어머니의 옛날 추억 등을 이야기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그 와중에 어머니는 사망의 문으로 나가고 또 다음해 크리스 마스 정천에 가족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형식으로 이어진다. 계속 등장인물 들은 늙어가고 사망의 문으로 나가고 누군가 탄생의 문으로 들어오고 새로운 가족들은 또 크리스스의 정찬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시간이란 우리 마음대로 늦추거나 빨리 오게 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시간은 흐르고 삶은 다양한 여러 가지 색깔로 진행되고 죽음도 그러하다. 천수를 다 누리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사고사로 일찍 죽는 사람도 있고 병으로 죽는 사람도 있고, 괴로움을 못 이겨 스스로 삶을 놓아버리는 이도 있다. 어쨌든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죽음은 언제나 갑자기다.
이 희곡이 재미있는 점은 한 공간에서 꽤 오랜 시간을 아주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무려 90년이란 길고 긴 세월은 ‘크리스마스 정찬을 즐기는 시간’이라는 공통점을 가짐으로써 한 가족의 인생이 담길 수 있는 연속성 또한 생겨 각 등장인물들이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일 수 있는 생명력을 지니게 된다. 한 공간에서 각 등장인물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가지고 들어 왔다가 흰 가발을 쓰면서 늙는 모습을 표현하기도 하고 또 ‘사망의 문’을 만들어 죽음으로 자연스레 걸어가는 할머니와 아버지, 태어나서 얼마 안 돼 죽은 아기, 장성한 젊은 청년이 군대에 입대 해 죽는 것 등을 보여준다. 즉 이 작품에는 죽음과 삶이 한 곳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우리와는 멀다고 생각하고 산다. 세상은 계속 삶과 죽음을 순환하는데 우리는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 등의 죽음이 아니고서는 깊에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므로 생(生)과 사(死)는 당연한 우리의 처음이며 끝이다. 마치 아침에 눈을 떠 햇살을 맞이하고 잠자리에 들며 어둠을 맞이하듯이 생(生)이 있으면 사(死)가 존재하는 것이다. 손톤 와일더의 작품을 참 좋아하는데 바로 이런 거다. 삶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동안의 시간, 공간에서 단순한 일상이 주는 행복에 감사함의 교훈을 준다. 바쁜 현대인들은 내일은 오늘 다음으로 당연히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내게 내일이 없을 수도 있는데 그걸 모른다는 것이다. 주어진 삶에 대한 소중함, 1분 1초, 현재의 시간이 주는 우리가 일상이라 놓치고 살았던 것이, 지나고 보면 소중한 것들임을 이 작품을 통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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