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선 시인의 말하는 수필

기타

박금선 시인의 말하는 수필

소하 0 985

f3ff12e3db0c73d0d8d245abee85b781_1645085606_92.png

박금선 시인



개 보름 쇠듯


                 박금선

경상도

오곡밥은 주로

쌀 조 수수 팥 콩이다


지방마다 섞는 곡식이 조금씩 다른 경우도 있다


아침

식사 후에는 소에게

키에 오곡밥과 나물을 담아 외양간에 갖다준다


소가

오곡밥을 먼저 먹으면 풍년이

들고 나물을 먼저 먹으면

흉년이 든다고 했다


개는

목줄을 묶어 놓고 하루를

꼬박 굶겼다고 한다


개한테

밥을 주면 개 몸에 파리나 모기가 끓어 빼빼 말라 죽는다고 했다


"개 보름 쇠듯"


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고 본다 평생 놀고 먹으니 미워서

한 말인 듯하다


이 말은 무시한다


강아지한테 오곡밥을 두부국에

말아 고상으로 준다


여러 집을

돌아다니면서 밥을 7번에서 12번을

먹는데 9번이 제일 좋고  나물도 9가지가  좋다고 들었다

f3ff12e3db0c73d0d8d245abee85b781_1645085807_7.png

여러 번

밥을 먹는 풍습은

더위도 타지 말고 아프지도 말고 일 년 동안

열심히 일하라는 풍속이었다고 한다


우리 마을은

말을 닮았다고 해

말산 등, 이라는 산이 있었다


말산 등에

올라가면 산이 높고

앞이

훤히 트여 당항포 앞바다도 보이고

달 뜨는 모습을 쉽게 바라볼 수 있었다


친구들과

달을 보러

볶은 콩을 호주머니에

가득 채워 말산 등을

올라갔건만


호주머니가

구멍이 나

콩은 다 도망가고 빈 호주머니만 댕그라니 웃던 추억


애당초

내 주먹만 한 구멍이 난 호주머니에

콩을 넣었던 어리석은 추억


부끄러워

친구들한테

내 콩이 도망갔다는 말

입 밖에 내 보지도 못한 추억


다 그립다


내일

아침이면 대한민국에 썩은 새끼줄 끊어지는 소리가 우두둑

들릴 것이다


왜냐면,


시골은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가 설이다


설이

끝난 내일부터

시골에는 농사일이 시작되니

머슴들은 일이 겁이 나

썩은 새끼줄에 목을 매단다고

했다


그만큼

농촌 일이 힘들고 어렵다는

표현해서 나온 말인듯싶다


여자는

달을 들이마셔야 예뻐진다고

했다 오늘 밤을 기다린다


어머니를 따라 해 본다


얼굴엔

피마자기름 대신 미스트를

넉넉히 뿌린다


한 올의 흩트림 없이 머리를

올백으로 가지런히 빗어 묶었다


좀 두꺼운 허리에 앞치마도

둘렀다


소도 없고 키도 없다


화단

나무 밑에

나물과 밥을 에이포 용지에 정성껏 차려 두고 왔다


제법 그럴싸하다


보름날 비슷하게 반쯤 흉내를 냈다


밥상을 차린다


시어머니 제사 때

쓰고 남은 김 빠진 정종도 한 잔 따라 본다


어제

저녁부터 3번째 보름 밥을

먹고 있다


차진

밥숟가락이

입천장에서 내려오질 않는다

맛있다.

f3ff12e3db0c73d0d8d245abee85b781_1645085745_54.png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