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 문학칼럼 36 - 임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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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식 문학칼럼 36 - 임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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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우 작가의 '사평역에서'를 통해 보는 톱밥과 난로의 역할

 

임철우 소설가는 전남 완도 출생으로 전남대 영문과 및 서강대 대학원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개 도둑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서정적인 문체로 이야기를 엮는 특징이 있다고 평가되며 현실의 왜곡된 삶의 실상을 통하여 인간의 절대적 존재의식을 탐구하는 작가로도 평가받고 있다. 이 작품은 저자가 저자의 친구인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라는 시를 읽고 소설로 풀어썼다고 한다.

 

소설로 들어가 본다. 눈오는 겨울밤 사람들이 간이역에서 기차를 기다린다. 사평역이라는 곳이다. 사평역은 간이역으로 특급 열차가 서지 않는 곳이다. 사평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병든 노인과 그의 아들, 감옥에 있다가 출소한 중년의 사내, 학생 운동을 하다가 제적당한 청년, 남편 없이 아이 들을 키우는 서울 여자, 술집 작부인 춘심, 행상꾼 아낙네 들, 그리고 미친 여자, 역장 등이다. 그들은 야간 완행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작품은 대합실 풍경과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사연을 이야기하고 있다.

 

농부는 기침을 많이 하는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가려고 막차를 기다리는 중이다. 출소한 남자는 무기수 감방장인 사상범 허씨의 부탁을 떠올린다. 소식이 끊긴 자신의 집에 들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허씨의 집을 찾아왔지만 허씨의 노모는 죽고 마땅히 갈 때가 없어 그냥 역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중이다. 제적당한 학생은 창밖으로 내리는 눈만 바라본다. 학생의 아버지는 그를 판사로 키우고 싶어했다. 서울에서 온 뚱뚱한 여자는 행상 아낙들에게 북어를 얻어먹으면서도 그녀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견지한다. 춘심은 신촌 민들레 집이라는 술집에서 일하는 작부다. 고향에서 5일을 쉬고 다시 서울로 가는 중이다. 서울 뚱보여자는 자신의 집에서 일하다 돈을 훔쳐 달아난 사평댁을 잡으러 왔다가 그녀의 사정을 듣고 오히려 돈을 쥐어주고 다시 서울에 올라가는 참이다.

 

특급열차만 오고 계속 완행열차는 오지 않는 상황에서 누군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흐유 대체 산다는 게 뭣이간디... ...” 그들에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평생을 죽어라 일해 온 농부들에게는 자신의 농토와 농사일이 전부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병든 몸만 남았다. 감옥에서 출소한 남자에겐 남은 인생은 어찌 살아갈까하는 걱정일수도 있고 희망 없는 미래 일수도 있다. 지난 시간은 감옥에서 보낸 시간이라 벽돌 밖에 생각이 안 난다. 제적당한 학생은 무엇을 위해 살아갈까. 아버지의 기대와는 달리 학생운동으로 점철되어 망가진 젊음, 그의 앞에는 어떤 꿈과 희망이 있을까. 돈밖에 모르는 뚱보 서울여자는 오로지 인생의 목표가 돈이었다. 죽을 때 가져 갈 것도 아닌 돈은 너무도 가난하게 살아왔던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다. 춘심에게 삶이란 무엇일까, 술과 손님맞이, 젓가락 장단, 늘 반복하는 작부의 생활 말고는 벗어날 방법이 없다.

 

드디어 2시간이 지나도 기차가 도착했다. 사람들은 기차에 올라타고 역장은 기차를 떠나보내며 객실로 들어가지 않고 기차 난간에 서있는 대학생을 마음에 걸려한다. 대합실로 돌아와 난로를 끄려 할 때, 그런데 대합실에는 미친 여자가 남아 있었다. 기침을 많이 하던 노인이 앉아 있던 그 자리에 비스듬히 누워 잠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가끔 나타나 공짜로 기차를 타곤 했던 여자, 어디서 왔는지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그녀, 역장을 미친 여자를 위해 난로에 더 넣을 톱밥을 더 가지러 간다.

 

등장인물들은 1970~80년대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의 인물들을 상징한다. 그들의 삶은 특급열차가 아닌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완행열차로 표현되는 비루한 삶이다. 작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사평역을 만들고 그곳을 그들이 살고 있는 공간으로 형상화 하고 오지 않는 기차를 통해 희망 없는 삶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 기차는 폭설 때문에 계속 연착이 되고 특급열차와 달리 언제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불평등이다. 어쩌면 안 올 수도 있다. 즉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고난 극복이 힘듦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난로에 계속 불을 지피기 위해 톱밥을 가지러 가는 역장의 행동을 통해 이 비루한 사회에 사랑과 희망의 불씨를 꺼뜨려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 소설은 꼭 수십 년 전 과거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언제 올지 모르는 완행열차를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작가는 역장이 그 추운 날씨에 대합실에 잠을 자는 미친 여자를 위해 톱밥 난로를 피우듯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을 훈훈하게 만드는 톱밥과 난로의 역할을 하라고 말하고 싶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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