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의 행복한 서평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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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식의 행복한 서평 14

제임스 0 212

[서평] 옛 편지로 읽는 조선사람의 감정
민병식

도서명 : 옛 편지로 읽는 조선사람의 감정
저 자 : 전경목
출판사 : 한국중앙연구원 출판부

Ⅰ. 서론 : 들어가며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다. 역사를 통해 현재를 투영하고 미래를 볼 수 있다는 의미로 본다면, 역사는 우리의 삶에 현재든 미래든 꼭 필요가 있는 요소이다. 옛 사람의 이야기를 만나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배우는 장이 역사이고, 옛 부터 이어지는 슬기로움과 인간 중심의 사상을 현대에 적용시키고 미래를 지향하는 것이 인공지능의 시대를 슬기롭게 살아가는 것으로 보여 지기 때문이다. 이 번에 책을 읽으면서 편지 속 인물들과 현대사회의 우리를 비교해보면서 수많은 고민과 갈등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면서 입장을 바꿔 내가 편지 속 인물들의 상황에 처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시대는 다르지만 같은 인간으로 고뇌의 마음을 공유하는 시간여행을 다녀온 듯했다.

이 책에 나오는 편지는 부안김씨 종가의 간찰 첩 4책, 낮장 간찰 655점 등이다. 간찰은 그냥 낱장 편지라는 뜻이다. 부안김씨는 전라도 부안현 이라는 곳의 지방양반인데 서울, 경기 등의 수도권의 지체 높은 사대부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교류하였고 이 편지 안에는 그 시대 양반들의 생각과 문화, 사적인 감정까지 모두 나타나 있어 조선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시대상과 가치관, 관리로써의 어려움과 인간적 고뇌까지 엿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자료라고 보았다.

Ⅱ. 본론 : 조선시대의 편지의 의미와 사상

ⅰ. 김홍원의 편지와 조선시대 양반 사회

많은 편지 중에서 조선 중기 김홍원과 그의 아들 김명열의 편지가 수록되어있는데 부안의 지방 양반이었던 김홍원은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주로 피난 간 선조에게 곡식 100여석을 보내기도 하고,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는 전라도 전역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모은 후 전라도 순창, 순천 등지에서 왜군을 무찌른 충신이었다. 그가 받은 편지를 살펴보면 우선 전라도 관찰사 였던 원두표의 편지가 있다. 원두표는 자신의 큰 아들에게 후사가 없자 첩을 얻어주기 위해 김홍원에게 편지를 쓴다. 바로 김홍원이 후에 병자호란 때 싸우다 죽은 명망 높은 가문의 김준과 친하였기에 김준의 서녀를 아들의 첩으로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바로 가문이다. 원두표는 김준의 가문을 명망 높은 가문으로 인정하였던 것이다. 후에 원두표는 김준의 서녀가 자신의 아들보다 10살이나 위이자 다시 편지를 보내 동생 원두추의 첩으로 삼았으면 한다고 편지를 보낸다. 신분 사회였던 조선시대라지만 김홍원은 부탁을 들어주기 참 애매했을 것이다. 관찰사라면 지금의 도지사 급으로 지역의 실세인데 거절을 하자니 그렇고 중매를 서자니 그것도 못할 일이어서 처신하기가 곤란했을 듯하다.

여기에서 지금의 사회에서 금기시 되고 있는 청탁이 등장한다. 그 시대는 온갖 형식의 청탁이 이어지고, 이를 들어주는 것은 그들 양반사회의 인간관계, 즉 양반의 사회관계망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지배계층의 관계를 돈독히 했을 것이다. 원두표는 김홍원에게 가죽신을 선물했다. 엄밀히 말하면 일종의 뇌물인 셈이다. 그것도 나라 재산인 공용물품이다. 그러한 청탁은 주로 편지로 이루어졌고, 바로 답례 편지로 전해졌다. 바로 청탁이 청탁이 아닌 으레 주고받는 선물 개념이었던 것이다. 수많은 종류의 청탁은 양반사회에서는 당연히 해야 할 관례였고 예의 였으며, 그들 사이의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연결망이었던 것이다. 아마 지금 같았으면 바로 관직에서 바로 내려 와야 할 것인데 말이다.

ⅱ. 김명열의 편지에 나오는 인간적 아픔

그런 김홍원에게는 아들 김명열이 있었다. 황해도의 평산부사로 임명되었던 김명열에게는 오랫동안 지병을 앓던 아내가 있었는데 아마 김명열은 아내 사랑이 지극했던 듯하다. 당시 평산에는 건강에 좋다는 유명한 온천이 있었기 때문에 김명열은 아내를 데리고 평산으로 가게 되는데 하지만 소문과 달리 온천의 효과는 없었고 그의 아내는 병이 심해져 갑자기 위독한 상태가 된다. 당시 평산은 사신들이 주로 오는 길목이었는데 아내가 위독할 무렵 사신 들이 평산을 지나갈 예정이었다.

그때 쓴 김명열의 편지다.

‘행차 중에 어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제 아내의 병환이 이미 막바지에 이르러 실낱같은 목숨이 거의 다했지만 아직 끊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즉시 출발하여 사행(사신행차) 맞이할 준비를 할 계획이었는데, 방금 기절해서 다시 출발을 멈추고 사망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내의 임종 때문에 사신 행렬이 오기 전 그가 관아에 도착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어서 이러한 편지를 보낸 것이다. 만약 사신들의 접대가 소홀해지면 처벌을 받을 까 하는 걱정이 담겨있다. 지금 같았으면 연가를 내고 대직을 세워 아내 곁에 있을 터인데 사람 목숨보다 외국의 사신이 중요한 시대였다. 그렇게 했어야만 했던 김명열의 마음을 오죽 했을까. 양반, 그것도 사대부의 체면을 중시하는 면도 확연히 드러나지만 나랏일이 먼저라는 관료로써의 충심도 엿볼 수가 있는 대목이다.

또,김명열이 평산부사로서 토지조사를 했어야 했는데 건강이 좋지 않고 천식까지 생겨 부임 삼 년 만에 결국 황해감사 이성징에게 사직을 원하는 청원서를 보낸다. ​

‘부사인 저는 본래 풍토병을 앓아 고질이 된 지 여러 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망한 아내를 고향에 묻고 돌아온 이후 증세가 더욱 악화되어 고통을 호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청원서는 거절당했고 운동을 하라는 다소 엉뚱한 충고를 답장으로 받았다, 죽은 아내를 제대로 매장하기 위해 휴가를 청원했으나 그것도 거절당하였고 결국 황해감사가 바뀐 후에나 휴가를 쓸 수 있었다고 한다.

ⅲ. 편지를 통해 본 조선시대와 현대사회 비교

조선시대의 편지나 지금이나 모두 사람 사는 세상에 관한 일이다. 그러나 이 편지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것은 역사적 사료로써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본다. 조선의 양반들의 삶과 풍속도가 담겨 있는, 우리가 흔히 보는 역사서에서는 볼 수 없는 일상생활이 편지에 있었다. 이 편지는 조선의 사대부들이 주고받은 한문 편지다. 편지를 읽으며 조선의 양반이나 지금의 사람들이나 느끼는 감정을 거의 비슷하다고 느꼈다. 상명하복의 회사생활,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 휴가를 주지 않은 관찰사에 대한 억울함, 이제는 은퇴하여 건강을 돌보고 싶은 노구의 바람, 독후감에는 기록하지 않았으나 지금의 코로나 19와도 같은 전염병의 상황에서 죽어나가는 백성 들을 보며 관리로써의 어찌할 수 없는 애통함 등을 이익과 주고받은 편지 내용도 나온다. 극히 인간적인 마음이다. 신분제 사회에서 양반에도 등급이 있었으며 자신의 사생활은 물론 아내의 매장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아픈 마음이 편지로 고스란히 전해지기에 그 시대 사대부의 어려움이 무엇이었나를 반추해 볼 수 있었다.

현대사회는 스피드의 사회다, 굳이 편지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스마트 폰이 있고 전화 한 통이면 모든 의견교환이 가능하고 궁금증이 풀린다. 그 옛날 조선시대에는 어떤 식으로 안부를 주고받고 서로의 생각을 교환했을까. 결국 서찰이라고 불리는 편지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옛 편지로 읽는 조선 사람의 감정’이라는 이 책은 우리의 뿌리인 조상들이 어떻게 살았으며 어떻게 서로의 마음을 전달했는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어떤 책보다도 진실한 마음이 담긴 책이 아닐까 한다.

결론 : 편지의 의미

우리는 만나거나 전화로 질문도 하고 부탁도 하고 대답도 한다. 그러나 때로는 수천 마디의 말보다 글이 더 진실하게 다가 올 때가 있다. 그만큼 마음을 드러내는 일이 말로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얼마 전 어버이날에 고3짜리 아들 녀석에게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첫 번째는 감사한다는 말이었다. ‘어렸을 때 아빠와 함께한 추억을 나열하며 고마움을 표현하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주 못해서 죄송하다고, 이제 부터는 받기만 하는 아들이아니라 받은 만큼 똑같이 돌려 드리지는 못해도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사는 것으로 보답하겠노라고, 항상 사랑합니다’라는 내용이었는데 그냥 말로 열심히 공부하고 부모임 은혜에 보답할께요 라고 말로했더라면 내 가슴에 고스란히 아들의 마음이 전해졌을지, 또 내가 감동을 받았을지 의문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이라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비롯하여 직지심체요절, 훈민정음 등 여러 개가 있는데 책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선시대 관리였던 김명열의편지를 비롯한 그 시대의 모든 간찰(서찰)은 역사적 사실뿐만 아니라 시대 상황과 그 시대 사람의 솔직한 마음을 기록한 선조들의‘마음 기록 유산’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아들이 내게 쓴 편지도 세월이 흘러 후세에게 전달되었을 때 ‘마음유산’이 되지 않을까. 그때는 어떤 감동으로 후세들에게 다가갈까. 옛 편지를 통해 우리 선조들의 마음과 밤새도록 이야기한 시간, 피곤한 줄 모르고 유유히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어느덧 새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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