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 문학칼럼 41-오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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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식 문학칼럼 41-오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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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오정희의 '완구점 여인'에서 보는 사랑의 역할
민병식

이 작품은 19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오정희 작가의 등단작이다. 작품은 1960년대에 동성애를 묘사했고, 우리나라 사회에서 문제가 되어왔고 지금도 존재마는 가부장의 모순, 가정의 소중함, 아동 학대, 방치 등 아동에 대한 폭력뿐 아니라 청소년의 올바른 성장 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볼 때 시대를 앞선 작품으로 평가하고 싶다. 


작품은 어두운 교실에서 반 아이들의 물건을 훔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주인공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소아마비를 앓아 휠체어에 앉아서 생활하는 동생, 아버지, 가정부와 함께 살고 있다. 아버지는 직장문제로 집에 없는 날이 많기 때문에 가정부가 주인공 남매를 돌보아준다. 그러다 아버지가 가정부와 재혼을 한다. 그러나 재혼한 후 엄마가 된 가정부는 주인공을 잘 돌보아주지 않을뿐더러 구박을 하기도 한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정상적이지 않음을 볼 수 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동생이 어느날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고 가정부 어머니마저 자신이 낳은 아이를 데리고 가출 후 주인공은 홀로 남는다. 어느 날 주인공은 완구점 안을 들여다보다가 휠체어에 타고 있는 중년의 여주인을 보고 동생과 어머니를 동시에 떠올린다. 무작정 완구점에 들어가서 우연히 눈길이 닿은 오뚜기를 샀고 그 오뚜기를 사기위해 교실에 남아 있다가 친구들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다. '그렇게 사모은 오뚜기가 백개가 된다.

어느 날 집을 나간 가정부, 즉 의붓어머니를 보게 된 나는 뒤를 밟는다. 아이를 임신한 상태로 댄스홀에서 춤을 추고 나오는 그녀에게 분노대신 연민을 느낀다. 주인공은 그녀에게 모성애를 갈구 했으나 어머니의 사랑은 커녕 한심하면서도 정이 뚝뚝 떨어지게 하는 추한 모습을 본 것이다. 늦은 시각에 자신도 모르게 완구점 여주인을 찾아갔고 이들은 함께 잠자리에서 관계를 맺게 된다. 이후로 수치심에 나는 더 이상 완구점을 찾아가지 못한다. 그 주변을 맴돌다가 완구점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다방이 들어선다. 집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오뚜기를 모두 없애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이 작품에서 가족에게 관심 없는 아버지가 나온다. 직접적으로 남성적 사회, 특히 가부장적인 면을 비판하고 있지는 않으나 작가의 많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가부장의 폭력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작품이 1960년대에 쓰여진 것으로 볼 때 작가는 그때부터 한국의 경직된 남성중심의 문화에 대해 인지하고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던 것처럼 보이며 그러한 생각이 주인공 아버지의 틀 안에서 방치된 채 자라나고 의붓어머니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보면서 사랑의 결핍 속에서 자란 주인공이 스스로 완구점 여인과의 동성애적 사랑을 통해서라도 사랑받고자 했던 자기애의 마음과 좌절, 그리고 모든 것을 잊고 한 발 더 성장하려는 주인공의 삶의 의지를 볼 수 있는 작품
이었다.

자식의 성장에 있어서 부모의 사랑은 절대적이다. 청소년 문제의 대부분이 가정의 결핍으로부터 나온다. 결손가정, 한부모 가정, 조부모 가정 등 하루에 세끼를 먹는 것처럼 어렸을 때부터 당연히 받아야할 받아야 할 사랑이 결핍되면 영양소의 부족으로 건강에 이상이 생기듯 심리적문제로 발전한다. 그것이 일탈로 이어지고 범죄로 이어지는 순환구조는 바로 사회적 문제로 이어진다. 결국 이 작품은 부모의 사랑과 제대로 된 부모의 역할을 말하고 있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은 구조하에서 사회와 사회구성원이 해야할 역할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고 본다. 결국 세상살이는 사랑의 충족 문제이며 가족이든 사회든 모든 삶의 순환구조에는 사랑이 있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우리는 이 시대의 빈곤층, 심리적 결손, 조악한 환경에 억압당하는 사람 들에게 얼마나 관심이 있는가. 모든 문제는 국가가 해결해야한다고 외치기만 하면서 스스로는 여러 사회문제에 대해 한 톨의 밀알이라도 되려고 한적은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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