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거시기(巨詩記)-구두/송 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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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거시기(巨詩記)-구두/송 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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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송 찬호


나는 새장을 하나 샀다

그것은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날뛰는 내 발을 집어넣기 위해 만든 작은 감옥이었던 것


처음 그것은 발에 너무 컸다

한동안 덜그럭거리는 감옥을 끌고 다녀야 했으니

감옥은 작아져야 한다

새가 날 때 구두를 감추듯


새장에 모자나 구름을 집어 넣어본다

그러나 그들은 언덕을 잊고 보리 이랑을 세지 않으며 날지 않는다

새장에는 조그만 먹이통과 구멍이 있다


그것이 새장을 아름답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새 구두를 샀다

그것은 구름 위에 올려져 있다

내 구두는 아직 물에 젖지 않은 한 척의 배,


한때는 속박이었고 또 한때는 제멋대로였던 삶의 한 켠에서

나는 가끔씩 늙고 고집 센 내 발을 위로하는 것이다

오래 쓰다 버린 낡은 목욕탕 같은 구두를 벗고

새의 육체 속에 발을 집어넣어 보는 것이다



♡송 찬호 두번째 시집<10년 동안의 빈 의자>/문학과 지성사1994년.


♡시를 들여다 보다가...


꼬물딱거리는 발가락을 곱게 접어 신발 속에 우겨 넣으면서

내 발을 신발이 아닌 새장 속에 집어 넣는 것이라는 발상이

신선하다.

신발을 새장이라 정의했으니 내 발은 어느새 새가 되었다.

새가 된 이상 못 할 것이 없다.

비록 새장 속에 갇히긴 했지만 그 새장이야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벗어버릴 수 있는 가짜(?)새장이 아니든가?

내 발은 <구름 위에 올려져 있고>

<한 척의 배 >위에 올라탔다.

그래서 내 인생의 힘든 길을 함께 해 준 고마움을 위로하고

뒤돌아보는 것이다.

나도 오늘 아침 출근길에 내 고마운 발을 <새의 육체 속에>

슬며시 집어 넣어 본다.

구름 위에 떠 있는 하루를 떠 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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