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거시기(巨詩記)-나무들의 의자/임 영석

기타

고야의 거시기(巨詩記)-나무들의 의자/임 영석

GOYA 0 52

♡나무들의 의자/임 영석


나무는 평생 무슨 힘으로 서 있을까.

평생 서 있기 위한 의자가 있기 때문에

나무는 직립의 삶을 선택했을 것이다.

나도 나무의 의자를 앉아보기 위해서

온종일 서 있어 보기로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갔을까.

어깨며,다리,허리의 관절에 통증이 몰려와

더는 버틸 수가 없다.그러나 나무는 살랑살랑 

춤바람을 즐기고 있다.동쪽에서 서쪽으로

해가 지는 동안 그림자를 뒤로 숨기며

뿌리 밖의 세상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산불로 검게 타 죽은 나무도 뿌리까지 번지지 않은

불길을 다행이라 생각하는지 곁가지 하나

새로 움트는 일로 직립의 침묵을 지키고 있다.

저 지독한 고집 하나를 지키려고

제 몸이 검게 다 타버려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나는 단 하루,똑바로 서 있지도 못하고서

나무의 의자를 앉아보겠다고 흉내를 냈을 뿐인데

가시가 박혀 있는 듯 온몸이 쑤셔온다.

나무가 평생 왜 입을 봉하고 사는지

끙끙 앓으며 생각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나무의 침묵이 의자라는 것을,


*임영석시집 <고래 발자국>(종려나무,2009년)


♡시를 들여다 보다가


서 있는다는 게 상상 이상으로 힘이 들 때가 있었다.

서 있는다는 일이 그저 가만히 제 자리에 우뚝 서서 꼼짝도

안 하는 일이 아닌 경우가 부지기수이긴 했지만...

내 주변에 서 있는 게 당연한 것들이 널려 있었지만 그 당연한 것들의 이유에 대해서 그냥 깡그리 무시하고 흐린 눈으로

못본 척 지나갔었다.

그러다가 나무들의 서 있음을 알았다.

저 서 있음의 이유가 혹여 정확한 이유가 아닐지라도 추측해보니 타당한 구석이 있다.

그러고보니 모든 만물은 믿는구석이 있어야 자신감을 얻고 멋지게 행한다.

나무들의 믿는구석은 <서 있기 위한 의자를 가진 것>이었다.

마치 내가 오래 서 있을 수 있는 이유가 이렇게 오래 서서 일을 하고나면 짭짤한 소득이 내 품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인 것처럼.

그런데 그 가지고 있는 의자가 차원이 다르다.

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침묵 >인데 반해

나는 <비어있는 곳간에 채워지는 욕망>이다.

무언가 채워지지 않으면 행하지 않는 나는 나무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배워야 할 판이다.

365a55ad3705469f17bbb483e83e9868_1698485395_46.jpg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