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거시기(巨詩記)-돋보기 안경/김 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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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거시기(巨詩記)-돋보기 안경/김 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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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안경/김기택


벗어서 책 위에 올려놓은 후에도

안경은 여전히 무엇엔가 초점을 맞추고 있다

거뭇거뭇한 것이 렌즈 안에서 꾸물꾸물 형체를 갖추더니

곧 선명한 글자들이 된다.


책 위로 파리 한 마리가 날아와 앉는다.

렌즈가 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한참 머뭇거리고 있다.

렌즈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파리는 검은 덩어리에서 나와

잔털이 촘촘하게 돋은 몸통과 다리가 된다.

헬멧처럼 커다란 눈으로 덮인 얼굴이 된다.

기하학적인 무늬로 짠 날개가 된다.


너무 오래 껴온 탓에

안경에 붙박인 눈알이 빠지지 않는다.

눈이 자는 동안에도 안경은 눈을 감지 않는다.

잠시도 깜박거리거나 한눈 파는 일이 없다.

어둠 속에서도 계속 눈을 뜨고 있다.

잔글씨들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힘찬 부동자세로 서 있다.


잠자는 동안에도 내 얼굴은 여전히 안경을 쓰고 있다.

꿈이 안경테 안으로 모인다.

꿈 틀이 열심히 꿈틀거리더니 곧 또렷해진다.

안경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꿈들은 안절부절못한다.


결코 감을 수없는 크고 두꺼운 눈에

파리는 여전히 붙잡혀 있다.

안경이 눈을 부릅뜨고 있어서 도망가지 못한다.

파리가 렌즈에 박힌다.양각된다.

알몸이 다 드러난 채 종이에 붙박여 움직이지 못한다.


♡시를 들여다 보다가


이제 나도 나이를 먹었다.

모든 기능들이 내용연한들로 꽉 찼으니 대비하라고 아우성이다.

이곳저곳에서 삐그덕소리가 들려온다.

그 중에서 유독 일찌감치 피로감을 호소하는 놈이 있는데

그건 바로 눈이다.

나이보다 먼저 늙은 체하며 엄살을 떨어대니 그 엄살,달래느라 돋보기안경을 들였다.

그 안경을 통해 들여다 본 세상에 공감을 해본다.

과연 그렇더라!

뿌연 세상에 들어 앉혀놓고 확대된 모습을 깔끔하게 들여다 보니 새로운 꿈들이 또렷하게 각인되는듯하다.

안경 없이는 무얼 들여다 보는 게 쉽지 않다.

온통 찌그러져 있는 표정이 그걸 말해주고 있잖은가?

안경 하나로 우리의 시선이 바뀐다.

때론 보지 않아도 되는 세세한 것들도 보게 되는 순간도

맞게 될 지언정...


나이를 먹어 덜 보고 덜 듣고 덜 말하라고 신체의 기능들이 

저하되고 있는데 우리들은 그런 자연적인 현상들을

억지로 거스리는 중?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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