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거시기(巨詩記)-연필/홍 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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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거시기(巨詩記)-연필/홍 일표

GOYA 0 32

♡연필/홍 일표


묻는다

오래 숨죽여 가늘게 이어지는 검은 울음이냐고

화석처럼 단단한 눈물이 반짝이는 밤의 골목이냐고


연필에서 새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고독사라는 말이 까맣게 타고 있다

무 연고 묘지 같은 사내의 목소리가 들릴 듯 말 듯


흰 종이 위에

혼령처럼 연필 향내가 남았다


일생이 한 가지 색으로 이어진다

푸른색도 붉은색도 아닌

아니 모든 색을 다 삼켜버린


목관 속에 웅크리고 있던 그가 또박또박 걸어나온다

컥컥 목이 막혀 할 말을 잃는

툭툭 부러져 동서남북 갈 길을  놓치기도 하는


울음 끝이 날카로운

심야를 걷는 연필심

고개 들어 창밖 먼 곳을 본다


혼자 걸어가는 

밤비가 멈추지 않는다


-계간<문학청춘 2017가을호>


♡시를 들여다 보다가


   오랫만에 연필을 잡았다.

   연필깍이가 아닌 그저 생생한 커터 날을 들이대고 서걱한 향내를 깍아서 방 안에 풀어 놓았다.

   순간 풋풋한 국민학교 교실에 앉아있는 책걸상이 보이고

침을 묻혀가며 공책에 써 내려가는 연필을 보았다.

   날카롭던 연필심이 무뎌지고 그저 단단하기만 했던 까만 색이 혀 끝에  맴도는 침방울을 만나 진한 생각으로 옮겨지는 순간이 새롭다.

   시인은 연필에서 새소리를 들었다.

   까만 고독사로 스러져가는 사내의 목소리도 들었다.

   연필의 향내를 혼령으로 느꼈다.

   새까만 흑연심이 향긋한 향나무에 감싸인 모습을 목관 속에

웅크리고 있는 그라고 했다.

   그는 시인의 시심(詩心)에 따라 연필 바깥으로 또박또박 걸어 나오다가 가끔은 부러지기도 하고 날카롭게 울며 표효하기도 한다.

   연필과 시인은 평생을 함께 해야 하는 숙명적 관계가 되고도 남았다.

   시인도 나도 뾰족하기만 한 샤프펜슬보다 가끔씩 부러지기도 하지만 정감있고 향내나는 연필이 좋고 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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