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거시기 (巨詩記)-부엌의 불빛/이 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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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거시기 (巨詩記)-부엌의 불빛/이 준관

GOYA 0 58
♡부엌의 불빛/이 준관

부억의 불빛은
어머니의 무릎처럼 따뜻하다
저녁은 팥죽 한 그릇처럼
조용히끓고
접시에 놓인 불빛을
고양이는 다정히 핥는다
수돗물을 틀면
쏴아 불빛이 쏟아진다
부억의 불빛 아래 엎드려
아이는 오늘의 숙제를 끝내고
때로는 어머니의 눈물
그 눈물이 등유가 되어
부억의 불빛을 꺼지지 않게 한다
불빛을 삼킨 개가
하늘을 향해짖어대면
하늘엔 올해의 가장 아름다운 첫 별이
태어난다


천양희 시인이 뽑은 감동詩 '흘러가는 것들은 눈물겹다'(2012.10)중에서

♡시를 들여다보다가

  지금은 부엌이라는 구분된 공간을 찾아보기 힘이 들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엌이라는 곳이 있었다.
물론 그 곳에는 엄마의 체취가 흠씬 묻어나는 장소였다.
백열전구가 흔들리며 부뚜막 언저리에 묻어있는 따뜻한 열기를
퍼트리는데 그 중심에는 항상 엄마가 있었다.
동짓날이라고 분주하게 팥죽을 끓여대는 울 엄마의 부엌과 시인이 떠 올린 고양이의 혀로 핥아지는 고즈넉한 부엌은 조금
분위기가 다르다.
그럼에도 시인이 써 내려간 부엌의 불빛과 울 엄마의 부엌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은 서로 닮았다.
왜냐하면 나도 분주한 엄마의 부엌에서 흘러 나오는 불빛아래에서 숙제를 마친 기억이 있기 때문이고,흐르는 눈물을 감추려고 뒤 돌아 계시던 등유로 변해버린 엄마의 불빛때문에
하늘에서 반짝이는 아름다운 첫 별이 엄마라고 생각하는게
닮았으니까.

그렇지만 우리동네에는 불빛을 삼킨 개도 없고 하늘을 향해 짖어대는 개도 없다.
그런 개가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온 동네가 시끄럽다고 난리부르스를 출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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