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거시기 (巨詩記)-칠백만원/박 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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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거시기 (巨詩記)-칠백만원/박 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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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백만원/박 형준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식구들 몰래 내게만
이불 속에 칠백만원을 넣어두셨다 하셨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난뒤
이불 속에 꿰매두었다는 칠백만원이 생각났지
어머니는 돈을 늘 어딘가에 꿰매놓았지
대학 등록금도 속곳에 꿰매고
시골에서 올라왔지
수명이 다한 형광등 불빛이 깜박거리는 자취방에서
어머니는 꿰맨 속곳의 실을 풀면서
제대로 된 자식이 없다고 우셨지
어머니 기일에
이제 내가 이불에 꿰매놓은 칠백만원 얘기를
식구들에게 하며 운다네
어디로 갔을까 어머니가 이불 속에 꿰매놓은 칠백만원
내 사십 줄의 마지막에
장가 밑천으로 어머니가 숨겨놓은 내 칠백만원
시골집 장롱을 다 뒤져도 나오지 않는
이불 속에서 슬프게 칙칙해져갈 만원짜리 칠백 장

♡시를 들여다 보다가

지난 달에 울엄마의 첫번째 기일을 보냈다.
엄마의 기일에 시인처럼 이불에 꿰매놓은 칠백만원 얘기를 식구들에게 하며 운 일은 없었다.
울 엄니는 시인의 어머니처럼 식구들 몰래 이불 속에 거금 칠백만원을 넣어 두셨다는 말을 하지는 않으셨다.
물론 그럴만한 돈도 평생에 없으셨다.
그렇지만 울엄니는 시인의 어머니처럼 제대로 된 자식이 없다고 우시지는 않았다.
울 엄니는 우리게 제대로 된 재산을 물려준 바는 없었으나 건강하게 백세를 넘기시며 자식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시려고 애를 쓰셨다.
덕분에 가진것 없는 우리들은 엄니때문에 병원비로 나갈 지출에서 자유로웠고 병간호를 위한 수많은 간병시간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었다.
울 엄니 마지막 순간에 나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엄마 사랑해요 먼저 가서 기다리세요 천국에서 뵐께요"
기일날 식구들은 먼저가신 엄니를 기억하며 다시한번 말을 했다."엄마 잘 계시죠?저희들도 잘 있어요"
이불 속에서 칙칙하게 변해갈 만원짜리보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계실 엄니가 생각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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