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거시기 (巨詩記)-나는 알지 못한다,다만/이 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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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거시기 (巨詩記)-나는 알지 못한다,다만/이 선영

GOYA 0 5
♡나는 알지 못한다,다만/이 선영

나는 선운사 동백이나 비슬산 참꽃이 아니다
고란사 홀로 숨어피는 고란초는 더욱 아니다
나는 봄이면 담장 안에 흔히 피는 개나리이거나 목련일
따름이다
담장 안에서 고개만 비죽 내밀고 보이는 만큼만 세상을 구
경하거나
더러 공원에 가면 사람들과 적당히 섞여 봄 한때의 정취
를 나누기도 한다
도시의 한길가에서 탁한 공기와 매연을 마시는 일도 마다
치 않아야 한다

나는 동백이나 고란초의 남다른 고고함 또는 남모를 고초
에 관해 알지 못한다 알 리 없을 것이다
나는 흔하디흔한 시정의 꽃으로 꽃 피워왔으며
그렇게 피고 지는 것밖에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나는 꽃 피어 있음의 한편 희열과 한편 슬픔, 환멸
을 알뿐이다
개나리 목련으로 꽃핀 데 그친 내 생이
생의 다가 아님을


이 선영시집<일찍 늙으매 꽃꿈>中에서 /창작과비평사

♡시를 들여다 보다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선운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비슬산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몰랐다.고란사가 어떤 산인지도 모르겠는 내가 이 시에 공감을 하는 이유는 고개만
들면 보이는 개나리나 목련꽃 때문이다.그저 봄만 되면 의연하게 제 색깔을 내느라고 요란을 떨어대는 통에 봄이 왔어도 시큰둥하게 눈만 껌벅이던 나를 한번쯤 그 색깔에 빠져
들게 하는 꽃들.바로 시인이 덧입은 개나리와 목련.
시인이 말하듯 고고함이나 남모를 고초따위는 모르지만 피고 지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이 꽃들이 나도 좋다.
  괜히 담벼락에 붙어서 지나는 행인들의 찌그러진 얼굴을 서서히 다림질 해 나가는 그저 밝기만 한 개나리와 순백의 하얀
심장 속에 감춰 두었던 봄의 참 모습을 터트려 주는 목련꽃.
이런 잠깐의 환희,봄을 일깨워 주는 밝음만이 개나리와 목련의
진정한 의미는 아닐 터.이렇게 꽃으로 올라와 팡팡 터지는 행위
뒤에는 보여지지 않는 또다른 전부가 무르익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나이가 먹을 수록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라는 참진리에 조금씩 다가선다는 느낌이다.그 조금이라는 양은 너무도 일천해서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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