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거시기 (巨詩記)-호랑이/김기택

기타

고야의 거시기 (巨詩記)-호랑이/김기택

GOYA 0 89
길고 느린 하품과 게으른 표정 속에 숨어 있는 눈
풀잎을 스치는 바람과 발자국을 빈틈없이 잡아내는 귀
코앞을 지나가는 먹이를 보고도 호랑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위장을 들러싼 잠은 무거울수록 기분 좋게 출렁거린다
정글은 잠의 수면 아래 굴절되어 푸른 꿈이 되어 있다
근육과 발톱을 부드럽게 덮고 있는 털은
줄무늬 굵은 결을 따라 들판으로 넓게 뻗어 있다
푹신한 털 위에서 뒹굴며 노는 크고 작은 먹이들
넓은 잎사귀를 흔들며 넘실거리는 밀림
그러나 멀지 않아 텅 빈 위장은 졸린 눈에서 광채를 발산시키리라
다리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어슬렁어슬렁 걷기 시작하리라
느린 걸음은 잔잔한 털 속에 굵은 뼈의 움직임을 가린채
한 번에 모아야 할 힘의 짧은 위치를 가능하리라
빠른 다리와 예민한 더듬이를 뻣뻣하고 둔하게 만들
힘은 오로지 한순간만 필요하다
앙칼진 마지막 안간힘을 순한 먹이로 만드는 일은
무거운 몸을 한 줄 가벼운 곡선으로 만드는 동작으로 족하다
금주린 눈초리와 발 빠른 먹이들의 뾰족한 귀가
바스락거리는 풀잎마다 팽팽하게 맞닿아 있는
무더운 한낮 평화롭고 조용한 정글

♡시를 들여다 보다가

  시를 읽다가 숨소리를 조심해야  되겠다고 느껴보긴 처음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호랑이의 큼지막한 발톱에 두드려 맞은 채
쓰러질 판이다. 풀잎을 스치는 바람과 발자국을 빈틈없이 잡아내는 귀를 가진 호랑이가 코 앞에서 씩씩거린다.어쩐지
이 시를 읽는 내내 내 귀는 뾰족해지고 바스락거리는 풀잎으로
변해 팽팽해지고 만다.호랑이의 하품은 그만의 포식후의 휴식
이겠다는 점과 허전해 질 위장의 상태에 따라 한번에 모을 힘의
한 줄 가벼운 곡선으로 만드는 동작으로 이어질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겠다는 그림이다.시인은 분명 호랑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수십번 혹은 수백번 돌려보고 또 확인했을 것이다.조용한 한낮 평화롭지만 전쟁터 같은 정글에서 살아 남으려면 자세히 들여다 볼 수밖에 없는 일 아니겠는가?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