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거시기 (巨詩記)-노을/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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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거시기 (巨詩記)-노을/도종환

GOYA 0 55
그대가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능소화보다 더 진한 노을이 그대 뒤에 있었다


그대가 기진맥진해 있을 때
감빛 노을에 어둠의 먹물이 흘러들고 있었다


그대의 한쪽 무릎이 주저앉을 때
노을은 한쪽 가슴이 까맣게 타고 있었다
포기하지 마라
재가 된 하늘 위에 사리 같은 별이 뜬다


그 별이 더 많은 별을 불러올 것이다
땀방울에 섞인 눈물 닦고 허리를 펴라


어둠 속에 어둠만 있는 게 아니다
저녁 바람도 초승달도 모두 그대 편이다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창비-2024,5,10

♡시를 들여다 보다가

  하늘을 올려다 볼 일이 많지는 않았다. 어쩌다 올려다 본 하늘은 서글펐고 아렸다.바쁜 눈으로 세상만 들여다 보다가 볼 수있는 것들을 놓치고 시간에 눈이 멀어 돌아볼 수있는 건 겨우 어둠뿐 이었다. 상황에 지쳐 눈물을 머금고 하늘을 올려다 본 순간 능소화보다 더 진한 위로가 새겨져 있었다.힘이 빠져 맥빠진 몸뚱아리를 추스리며 올려본 하늘은 감빛노을에 먹물이 흘려드는 모습이었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노을은 마냥 이쁘기만 하며 감탄마저 부른다. 상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노을은 위로이면서 희망이 된다.그렇게 노을 너머로 찾아드는 반짝이는 별들과 초승달까지 내 편으로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내고야 만다.
  노을은 여유롭거나 아플 때 모두에게 진한 말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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