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명호 시인의 도라지 수필 5, 스토리가 있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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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명호 시인의 도라지 수필 5, 스토리가 있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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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명호 시인 수필가



사랑의 오작교 4

                        

                  하명호


살아가며 느껴져가는가? 올 한해는 해도 너무한 거 같은데 유별나게 다가오는 그 어느 해인가 보다 한다.

비가 찔끔거리며 거의 땅만 적시어들어 유월이라 모내기는 짜집기 하듯이 겨우 마치고는 내리 쬐는 햇빛은 심술이라도 부리고 있는데

가뭄 끝에 억지로 꼽아둔 벼가 가무 살이 들어 올해의 수확은 종 친 거 같아 한숨 바가지째 내어 쉬는가 했는데 하늘 하는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 칠 팔월이 지나가니 하늘에는 먹장구름 비를 품어 듬뿍하니 양동이째 내려 부어버리고 가뭄에 뱃가죽 쩍 벌린 저수지는

봇물 터지듯 하고는 들이부어 버린다. 바들거린 벼들은 모가지만 내밀어 그나마 물 구경 제대로 못 해 속을 태우더니 어느새 폭우로

통째 잠가버리고서 있다. 곧 있으면 추석이 다가오는데 가뭄 이어 태풍이 들이 닥치고는 연약하니 우리네 농심 속이 타들어 가고 있는데

아이고 별나다 이 해가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별난 한 해도 계절의 흐름은 거역을 못 하고 있으니 내일이 중추절인데 온갖 풍상 고생들 겪으며 맞이하는 추석이라 그래도 동리에 들어서니

마음마저 풍성하니 속이 확 트여져서온다. 이래서 사람들 외지 나갔다 들어오면 제일 반기는게 고향인가보다 객지 나갔다 들어오는 친척들

모습 보이고 그래도 그중에 낯선 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종칠이!

명절이라 그러잖아도 좁은 골목이 비좁게 차들은 담벼락에 다닥다닥 붙어서 있는데 못 보던 중형승용차에서 내리는 낯익은 얼굴인데 옆에는

안식구와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과 함께 올해 나이 잔나비띠라 오십 줄에 들어선 중년의 신사풍하고는 늠름한 모습하고서 동리에 들어선다.

차량 뒤 칸에 트렁크에서 큼지막하니 전동 휠체어를 꺼내어 내어놓는다. 고향 떠난 지 사십 년이라나 한걸음에 달려와 석기형 형수님 찾아

 반가와서 손부터 잡고서 놓지를 않고서는 꼭 잡고 지극하니 먼 하늘만 응시하고서 있다.


잠시나마 아스라이 기억 속으로 젖어 들어가 지긋하니 얼굴을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는데 눈에는 닭똥 같은 눈물이 고마움의 표식이되어

흘러내리고 있으니 종칠이 이 동리에서 태어나고서 어린 시절 자라서 제 엄마 산후통으로 종칠이 낳고 나서 이내 이 세상 하직을 하여버려

 어린 핏덩이 종칠이 아버지는 그래도 멀지 않아 이웃에 당시에 새댁이었던 석기 형수님 젓을 받아 먹어 키웠으니 자라면서 당연시하며

엄마라 여기고 있었다.


여기에다 종칠 아버지 나이 젊어 또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워 딴 살림 차리는 바람에 어린 핏덩이 종칠이는 할 수 없이 살러 들어온 젊은 계모

등쌀에 모진 고생을 하게 되었으니 계모로부터 낳은 어린 얘기를 둘러업고는 한겨울 엄동설한에도 시꺼멓게 빛이 바래버린 천 얇은 무명셔츠에다

거기에다 등짝에는 갓난 이 흘리는 콧물 엉키어 마를 날이 없었으니 하도 그렇게 구박을 당하니 행여 동리 사람들 아직은 어린애인지라 불쌍하다

뭐라도 챙겨주면 손에서 뺏어다가 보는 데서 땅으로 패대기 질 해버리곤 하여 거기에다 계모로부터 온갖 쌍욕을 먹어대어 아예 동리 사람들은

외면 아닌 외면을 할 수 밖에는 없었다. 다른 또래의 얘들은 한창 개구쟁이 노릇 하면서들 뛰어놀고 있는데 어린 종칠이는 학대를 받아 거기에다

제 아버지마저 없으니 계모로부터 얼마나 괄시를 받았을까 싶다.


자라면서 변변찮아 옷도 제대로 못 사 입었었고 그나마 이따금 들러보는데 그것도 친가에서 아주 먼 동리에 출가한 나이 들어 한 분 밖에 없는 늙은

고모도 옛적 인공시대에 빨갱이들로부터 고문을 받아 어린 나이에 다리 불구자가 되어 버렸으니 그래도 고향이라 이따금 절뚝이는 다리 끌며 지팡이

짚고서는 피붙이라고 불쌍하다 조카 어린애 누가 볼까봐서는 동리 밖 공동묘지까지 가서는 어린얘 끌어안고서 애통하고 서럽게 울어대는데 동리

사람들 따라서 또한 통곡하였다 하더라. 그러한 얘를 초등학교 들어가는 해에 제 아비마저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을 해버리고 초등학교 4학년을

못 마치고는 추석도 이른 늦은 여름에 마지막으로 외지로 데리고 가버리고는 그렇게 고향을 떠나버린 것이다.


그나 그 이쁜 용모에 석기 형수님도 젋어 고생 크게 하지 않아도 흐르는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다던가 나이 이제 육순이 넘어가서 요즘 들어 작년에

허리 삐끗하여 병원 신세를 지고 나서부터는 영 몸이 이전 같지가 않아 부자연스럽다. 이런 상황을 그간 수시로 전화 통화를 하면서 파악이 되었는지라

전동훨체어로 이번 추석 때 준비를 해온 것이라 하니 동리에 먼 이웃 형수님 고마워 어쩔 줄 모른다.


  "- 뭘라꼬 이 비싼 걸 사 오고 그래!"

" - 아이 뭘요 변변찮은데요,"

그리고는 옆에서 바라보는 석기형에게는 저번에 사진으로 보았는데 경운기가 넘 크고 버거워 위험해 보여서는 이참에 운전하기도 좋고 가벼운 최신형

관리기 신청을 해두어 며칠 안 있으면 농협에서 배달 의뢰하였으니 이내 도착을 할 겁니다.


형님 연세도 있으시니 이제 최신형 관리기로 농사에 보탬이 되었으면 해요.


그리고요~~

이번 추석 때 쓰시라고 형수님 용돈 조금해서 드리고 갑니다.

하고서는 종칠이네 가족은 형님 집에 와서도 방에 들어가지도 않고 있어 석기 형수님은 재차 채근을 하시고 계신다.


질부야! 그나 얼른 얘와 삼촌하고 방으로 들어와~^

아뇨 모처럼의 시골 방문인데 그래도 울 아버지 산소에 벌초라도 해 주고 가려 해요.


자네가 네 아버지 산소를 못 찾을 거니 내 따라오시게 하며 형님은 낫을 들고 이내 앞장을 서 가시고 있어 종칠이네 식구들 따라나선다.


벌초 가는 길에 지금은 아주 오래 전에 먼 친척이 경작하는 콩밭으로 변해버린 한참 동안이나 그 옛날의 집터를 바라보고는 그래도 제 아버지 산소

찾아 벌초라도 해주고 가느라 기특도 하고 내 뱃속으로는 안 나아도 키운 정이 그리워서 고생 끝에 낙이 온다 학교도 검정고시 마치고 하도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다해서 당시에 사장이 아무 조건없이 물려주어 도시에서 지금하는 종합 철물점 사장이 되어 사람 구실 제대로하는 어릴적 종칠이네 식구들

산골짜기 돌아 저 만치서 멀어져가 버린다.


석기 형수님 아픈 다리 주무르며...

내 뱃속으로 난 자식도 잘 하지만 내 젓 먹고 씨만달라 새끼들 보담 더 잘하고 있제!

거저 몸도 마음도 건강만 하자꾸나

훌쩍하니 커버린 내 새끼들..       (제4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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