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 문학칼럼 8 - 가즈오 이시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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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식 문학칼럼 8 - 가즈오 이시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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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이 가르쳐주는 인생의 '가장 좋은 시간'
민병식

가즈오 이시구로는 201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로 일본 태생이다. 5살에 영국으로 이주하여, 영국에서 성장한 작가로 그의 작품은 모두 영어로 쓰여있고 일본에서 살았던 경험도 있고,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도 있어서 아예 일본과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겠으나 영국작가로 분류된다. 그의 대표작인 '남아 있는 나날'은 집사인 주인공 스티븐스가 노년에 여행을 떠나면서 작품은 시작하지만 사실 이야기는 스티븐스의 6일간의 여행 기록보다는 그가 스스로 돌아보는 인생 기록에 주목하고 있다. 영국 귀족의 장원을 자신의 세상 전부로 여기고 살아온저택에 집사 스티븐스의 인생과, 그의 시선을 통해 근대와 현대가 교차되면서 가치관의 대혼란이 나타난 영국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한다. 


영국의 귀족 달링턴 경의 대 저택에서 제임스 스티븐스는 아버지와 함께 집사로 일했다. 그리고 집사장이 되었다. 젊었던 날에 하녀장으로 켄튼 양이 들어왔다. 켄튼은 스티븐스에게 애정을 표시하기도 했다. 스티븐스도 마음이 끌렸으나 집사라는 업무에 성실하기 위해서 모른 척 했다. 스티븐스는 아버지로부터 집사로서 살아야 할 성실성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이후에 켄튼은 지금의 남편을 만나 웰링턴 경의 저택을 떠났다.

집사로서의 직업 정신과 주인에 대한 충직함은 그의 삶의 거의 모든 것이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평생을 집사로 살아 온 아버지가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스티븐스는 집사로서의 업무에 매달렸고, 함께 일했던 켄턴 양의 구애는 짐짓 못 본 척, 아닌 척 묻어 버렸다. 아버지의 죽음도, 사랑의 감정도 모두 그의 직업적 충직함에 묻혀, 맹목적인 극복의 대상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전 주인인 달링턴 경 또한 1차 세계 대전 승전 국가들이 패전국 독일을 상대로 무자비한 착복을 감행하자, 순수한 신사도 정신에 기반하여 승전국들의 자제와 독일에 대한 동정을 주창하게 되지만, 그의 선의와는 무관하게 나찌 옹호 주의자라는 누명을 뒤집어 쓴 채 작고 한다.

그리고 35년의 세월이 흘렀다. 스티븐스도 오늘, 내일 곧 은퇴할 날이 다가왔다. 이때 켄텐 양이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젊은 날에 있었던 일들이 적혀 있었다. 스티븐스는 켄텐의 편지를 읽으면서 뒤 늦게나마 지난날을, 그리고 켄텐 양을 떠올리면서 마음 속으로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그는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마치 수십 년 동안이나 그녀를 기다렸다는 듯이, 여러 번이나 읽었다.

35년이 흐르면서 자신이 모시던 웰링턴 경도 죽었고, 대 저택도 미국인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가 할 일도 없어졌고, 그의 위상도 무너졌다. 공허하고, 빈 자라에 예전의 켄텔 양이 비집고 들어오면서, 예전에 그녀를 떠나보낸 것이 실수라고 생각한다. 그는 캔튼 양을 만나려 기차를 탔다. 스티븐스가 캔튼 양을 만나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남편이다. 과거는 추억 속에 아름답게 살아 있을 뿐 되돌아 갈 수 없는 곳’이라고 말한다. 캔튼 양과 노후의 생활까지 그려보았던 그로서는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모든 것은 달링턴 경에게 주었고, 자기에게 더 이상 남아 있는 것도, 또 남에게 줄 것도 없다고 믿는다. 그는 무거운 걸음으로 선착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노인을 만나서 충고의 말을 듣는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즐거운 때이며, 황혼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이다. 이제 과거를 잊고 남은 날을 즐겁게 살아라.”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은 담백한 문체로 인생의 황혼기에 지나온 시간 동안을 돌아보게 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삶에서 놓쳐버린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고,
남아 있는 나날 동안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소설 서두에 켄튼 양이 스티븐스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남은 내 인생이 텅 빈 허공처럼 내 앞에 펼쳐집니다.”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내 앞에 앞으로 펼쳐질 인생이 허공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내일을 잘 설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이 저녁”인 것처럼 내 인생 중 가장 좋은 순간은 남아있는 나날을 시작하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 가장 좋은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바로 내가 할 일이니 남아있는 나날을 행복하게 위해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에 대해 심도있게 고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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