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해의 찾아보고서步顧書, 서원과 고택 일지 2 신남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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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해의 찾아보고서步顧書, 서원과 고택 일지 2 신남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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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서원 소개

무안면 정곡리에 있는 신남서원(莘南書院)은 고려 말기 대마도정벌과, 조선 태조 이성계를 도와 위화도(威化島) 회군에 공을 세운 정국군 박위위(靖國軍 朴威)와 조선 초기 문신인 소총재(小塚齋) 박기(朴耆) 부자를 향사하는 서원이다. 밀성박씨 정국군파 종중 소유로 종중에서 관리한다.

신남서원은 순조 22년(1822)에 후손인 박성기(朴聖基)의 주청으로 밀양 사림(士林)의 공론을 모아 창건 하였다. 서원내 사당을 “상모사(尙慕祠)”, 강당을 “경보당(景報堂)”이라 하며, 당시 봉안문(奉安文)과 상향축문(常享祝文)은 응교 강세백(應敎 姜世白)이 지었다. 이 서원의 주향으로 모셔져 있는 박위(朴威)장군은 고려 우왕때 김해부사(金海府使)로서 여러번 왜구를 격파했고, 우왕 14년에는 경상도도순문사(慶尙道都巡問使)의 직책으로 전선(戰船) 100여척을 인솔하여 이종무(李從茂) 이후 대대적으로 대마도(對馬島)를 쳐서 300여척의 왜선(倭船)을 불태우는 등 대승을 거두었다. 1994년 우리 손으로 네 번째 건조된 잠수함(潛水艦)에 이 박위(朴威)장군의 이름을 빌어 “박위함(朴威艦)”으로 명명(命名)되기도 했다.

고종 5년(1868)에 내려진 서원 철폐령에 따라 사당은 철거 되었으나 후손들은 서원 강당의 당호를 경보당으로 바꾸고 재실(齋室)로 삼아 이곳에서 박위 장군을 주향(主享), 박기를 배향(配享)으로 향사를 올렸다. 1981년에는 후손들의 발의와 고을 유림들의 호응으로 상모사(尙慕祠)를 이전대로 중건하였다. 현재 서원의 배치는 사당인 상모사를 중심으로 전면에 신문(神門)을 설치하여 신역(神域)을 구분하였으며, 사당 밖에는 강당인 경보당이 있다. 경보당은 견치석으로 쌓은 높은 기단 위에 지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홑처마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평면은 가운데 삼칸 대청을 두고 그 좌우에 온돌방을 들인 형식이며, 대청 앞은 개방하고, 온돌 앞에는 두 짝의 띠살창이 달려 있다.               -출처:김익택 소설가의 글나라, 시가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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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가야, 김해 평야, 김해는 참 복운의 칭호가 가득하다.

낙동강을 다스리듯 쭉 뻗은 기상이 가히 두려움 없다.

분산성, 비상하는 용이 빛발로 지켜보는 저 질주는 위대하다.

박위장군 눈 부럽 떴다. 어느 이무기가 약탈을 능하랴

이미 마음이 먼저 맨발로 밟아 디뎌 걸어 천천히 봄을 피워 본다.

얼마 전 기행 하던 초저녁 붉은 노을에 다시 가슴이 광활해져 온다.

세상의 모든 역할이 오롯이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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