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기획, 조기조의 경제 칼럼 9

사회

특집 기획, 조기조의 경제 칼럼 9

소하 0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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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도서관 무관중 힐링 시낭송 발표회에서


불현듯, 아련히(2019.02.13) -조기조 경남대 명예 교수


조만간, 아니 언젠가는, 오래전에 그녀가 살던 초가집 지붕위로 박꽃이 피던 그 집 앞 돌담길을 기웃거려 볼 것이다. 물론 그녀는 이제 거기에 없다. 그 골목, 그 돌담이 있기는 하는지 모르겠다. 초가집도..... 그 우체국이 하는지도 모르겠다. 밤새도록 손 편지를 적어 고쳐 쓰고 새로 쓴 그 봉투를 들고 가볼 것이다. 그 우체국에서 우표를 사고 뒷면에 침을 바르고는 둘째손가락 지문으로 고루 발라 붙여서 꼭꼭 눌러 빠알간 우체통에 넣을 것이다.

 

솔베이지를 기다리다 흰머리가 되었다는 천둥벌거숭이 노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온통 도대체 솔베이지는 왜 안 돌아오고 어디서 무얼 하며 애를 먹이나 생각했다. 어디선가 사람을 만나면 그녀가 솔베이지 인줄은 모를지라도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그 사람인 줄은 당장에 알아차릴 것 같다. 내 닮은 멍청이를 내가 왜 모르겠는가?

 

3으로 돌아가 초임으로 온 그 여선생님을 모두가 좋아했다. 그럴 만 했다. 실력 있고 공정했기 때문이었다. 까까중 학생들을 인격으로 대우했다. 끔찍이, 아주, 정말로 선생님을 좋아한다는 말을 못했다. 대신 국어공부를 열심히 했다. 내 질문에 막히거나 쩔쩔 매는 모습으로 그녀?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혼자서 앓다가 불발로 끝난 짝사랑이었다면 모두가 웃을 것 같아 감추어 둔다.

 

이 세상 여기저기를 다 가볼 생각은 없다. 그럴 형편이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어디 붙어있는지도 잘 모르는 소렌토에는 가 볼 생각이다. 소렌토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돌아오라 소렌토로소렌토로여! 돌아오라로 생각했다. 그래선지 한 동안 눈이 크고 긴 머리 소녀일 것 같다고 소렌토로 아가씨를 그려보곤 했다. 하여간 자동차 이름으로도 쓰이는 소렌토는 여성이기는 하다.

 

세 살짜리 딸아이가 내 구두를 끌고 나갔다. 그러지 말라고 해도 호기심이 발동해선지 나가다가 계단에서 엎어져 앞 이빨을 깼다. 큰일 날 뻔 했다. 젖니라서 몇 년 후에 갈기는 했지만 가슴을 쓸어내렸다. 큰 모자를 쓰면 바람 불 때 날리고 금세 흐트러져 고쳐 써야 한다. 큰 모자라고 좋은 것이 아님을 누가 모르겠는가? 30여년을 과분하게 선생질?을 했다. 갑질의 그 질과도 동격인 것 아니던가? 게다가 큰 구두, 큰 모자보다 더한, 큰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가 후회막급이다. 덜렁 맡고는 이내 알아차렸다. 그러나 물리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아 바동거리다가 여기까지 왔다. 막상 정년까지 오고 보니 황야에 버려지나 싶어 두려움이 없진 않았으나 꽉 끼지 않고 약간 큰 구두와 모자에다 형편에 맞는 차와 집, 그리고 인생을 살기로 했다. 내려놓으니 차암 홀가분하다.

 

아는 사람이 건물주다. 요즈음 초등학생들의 꿈이라는 건물주는 밥 한 끼를 못 산다. 알고 보니 소위 100억대나 되는 건물을 대출받아 샀는데 공실은 많고 임대료도 잘 안 걷히고 이자와 세금은 꼬박꼬박 떼어가니 빛 좋은 개살구가 그것이고 조그마한 집 한 채에 오순도순 사는 서민들이 개~애 부럽단다. 그는 큰 집, 너무 큰 집에 산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내려놓을 줄을 알기 때문이다.

 

저녁 같이 먹자가 아빠가 해주는 칭찬이란다. 딸은 당연히 모르고 있고. 느리고 둔하고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고쳐지지 않는 딸에게 아버지는 섭섭했고 딸은 그 잔소리가 너무 싫었던 것. 견우와 직녀는 칠석날 오작교에서 만난다. 견우는 직녀의 동쪽 하늘에, 직녀는 견우의 서쪽 하늘에 있지 않은가? 네가 이리 오라고 해서 될 일은 아니었다. 잔소리 장이 애비가 지긋지긋하고 아무리 말해도 개선이 되지 않는, 변화 없는 딸이 미련스러웠던 부녀간이다.

 

딸아이가 친구가 하는 험담을 듣고 어필했는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그 친구를 보고 상처를 받았단다. 남의 험담을 못하는 딸이라 자신에 대한 험담을 전해 듣고는 배신감이나 정의롭지 못함에 상처가 컷을 것이다. 위로해 주었다. 존중할 가치가 없는 친구이니 괘념치 말라고. 네가 나쁜 사람이 아니면 된다고. 그래도 외로울 것이다. 그래서 내가 너를 믿는다고 하였다. 외로우면 아빠와 자주 연락하자고. 사람들이 외로울 때가 있을 것이다. 엊그제 혼자서 와인을 한 잔하고 와인만큼이나 눈물을 흘렸다. 나오는 걸 어떻게 막나? 그럴 때가 있고 그런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출처 칼럼리스트 조기조 UTAH 코리안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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