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우 시인의 <눈빛 끌림으로> 그 곳에 1
이봉우 시인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이봉우
빈 마음으로 가시라
그러면 화엄의 꽃동산을 보리니
얼마큼 가져야 만족하는가?
무릇 한 생을 돌고 또다시 열 생을 더 돌더라도
만족에 이르지는 못하리라
둥지 하나뿐인 새들도 맑고 고운 목소리로 노래하고
눈비 오면 눈비 고스란히 맞는 야생의 짐승도
거짓 없이 살아가지 않느냐
풀꽃을 보고 무심을 배워라
삶은 스스로 누리는 것
가진 것 없다 생각하는 지금도 충분하다
기대를 낮춘다면
행복의 꽃송이 짓밟지 마시라
더 더 더에 목말라 앞만 보고 뛰는 삶 얼마나 슬프냐
레인보우 힐
이봉우
가을이 손짓하는 길목에서
무지개 같은 추억을 쌓으려고 중원으로 갔는데요
따가운 햇볕으로 체력은 허기졌으나
팔월의 하루 해는 짧았습니다
활주로 같은 잔디 위에서
한 마리 새가 되어 공처럼 날고 싶었는데요
새처럼 공을 날리고 싶었는데요
그 꿈은 나비처럼 날아갔습니다
거리와 힘의 반비례를 주문처럼 외웠지만
언제나 욕심에 발목 잡히고
바람에 뒤집혀 하얀 속살 보이는 나뭇잎처럼
구겨진 허물만 실컷 보였습니다
길섶의 꽃들도 민망한 듯 조용했습니다
꼭두바우
이봉우
어릴 때는 왜 그리 촌스럽게 들렸을까?
산골보다 더 산골 같은 이름
도회지에 외가를 둔 친구들이 부러웠다
외갓집 얘기가 나오면
갈평이라고 거짓말을 하거나
아니면 얼버무리기도
지금은 다 떠나고
하룻밤 묵을 수도 없는 엄마의 고향
산모퉁이 돌아가는 바람 따라
한번 가보고 싶은 곳
엄마 생각
이봉우
가슴에 묻어 둔 서러운 이야기
부엌에서 도란도란
그 이야기를 듣노라면
청솔 연기에 눈 찔린 듯 눈물이 났습니다
나는 작은 모닥불 되어
엄마의 시린 가슴 녹이려 맞장구쳤지요
홀로 울기도 많이 했을
유복녀의 슬픈 운명은
한평생 철길처럼 이어지고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었습니다
가신지 근 삼십 년
어느 별에 계시온지요
백합을 좋아하신 당신 그리워
눈시울 붉히며 먼 하늘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