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시인의 살아갈수록 단단해 지고 싶은 시詩 1
이정우 시인
밤 가시
이정우
익어 가면 익어 갈수록
끝단은
더 단단해지고
더 날카로워졌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아무 조건 없이
다 드리고 싶어서
새벽이슬 맞으며
아무도 없는 산등성이를
창검 들고
밤을 지새웠습니다
속에 있는 보물
상하지 않을까
염려 붙잡고 놓고
온몸을
세상 근심으로 감쌌습니다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면
책무 다 마쳤다고
끝마무리 짖기 위해
속에 있는 보물
다 꺼내어 놓고
쩍 하게 가슴 벌리며
두 손에 바쳤습니다
이정우 사진 작
미나리의 눈물
이정우
<미나리 영화를 보고 나서>
막막한 가슴
숨통을
짓누른다
슬픔 감추지 못해
눈물이 된다
얼마나 많이 울면
속에 있는
아픔의 찌꺼기
다 쏟아져 나올까
눈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울분 토한다
이역만리
붙잡고 있는
이질의 갈등이
다 놓고 떠날 때까지
쏟아져 내리는
절망의 나락된다
고통의 바다에
주룩주룩
빠지는 통증은
모든 것
앗아가 버린 화마의
불길
집어삼킨
세상 저 너머 끝에서
찾아온 분노
활활 이글거리며
촛점 잃은 눈물바다에
비틀 빠진다
삼색 신호등
이정우
정확한 시간에 맞추어
일어났다가 앉기를
수천만 번
큰 눈 뜨고 정지선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바라보고 또 바라보기를
무한 소수점 찾아
껐다 켜기를 반복한다
폭염 가운데에서도
폭풍우 몰아치는 야밤에도
호루라기 입에 물고
빨간 등 켜서
하늘 높이 치켜세운다
아무리 급한 마음을 먹었어도
성질 사나운 야수가
달려 들어왔어도
한숨 돌리며
참고 조용히 기다려 보라고
때를 다독인다
한 템포 늦게 가야만
빨리 갈 수 있다는
달리기의 비법 알려 주려고
늦은 봄꽃비 내리는 날
청아한 이슬 머금고 솟아오른
연초록 새순의 잎새
산들바람에 날리며
하늘 높이 달려보라고
격려의 초록 등
환하게 눈을 밝힌다
때때로 너무 앞서
달리지 말라며
개나리 노랑 꽃등
가지 꺾어
가는 발걸음 세운다
피아니시모
이정우
강한 자 중에 약한 자의
심장박동 소리이다
크게 들리는 음성 속에
아니 들리는 음성이다
손으로 느껴지는 맥 놀림
미동으로 감지한다
겉껍데기 벗어낸
여린 속살의 속삭임이다
들어내지 않는 숨결
땅 꺼지는 한숨
속으로 꼴깍
삼키는 순간 포착이다
촛불 바람으로 흔들리는
불꽃 심지의 움직임이다
강한 심줄 속아낸
부드러움의 마지막 떨림이다